[내 인생의 빛] 1인칭 다큐가 절실한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큐를 만들 때, 마치 카메라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찍어보는 것이 필생의 목표라 여러 가지 ‘잡 기술’을 써보는데 요즘 쓰는 기술은 <나도 하나 까기>다.

방법은 간단하다. 촬영하는 나 자신이 이야기해서 별로 득 될 것 없는 부끄러움을 먼저 하나 까놓는 거다.  그렇게 하면 출연자가 경계를 누그러뜨리는데 이 때 타이밍을 잘 잡고 레코드 버튼을 누른 채, 핵심적인 질문을 쏘아붙인다. 당신의 쪽팔림은 뭔가? 하고. 그렇게 무장해제를 시킨 후 마치 카메라가 없는 상황인 것처럼 찍는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마치 카메라가 없는 상황인 듯한, 진짜 객관은 찍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이클무어가 나타나 내 인생에 한줄기 빛을 내어주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 따르면 일상적 세계와는 달리 양자세계에서는 물질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는데 그 이유가 관찰자 때문이라고 한다. <보는 행위>자체가 대상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객관과 주관의 구분은 없어지고 상호작용만이 남는, 존재가 죽고 관계가 사는 세계.

‘찰턴 헤스턴’에게 총기소지에 관한 곤혹스러운 질문을 퍼부어대는 마이클무어는 상호작용하는 미장센 그 자체이다. 객관을 빌어, 있는 카메라를 마치 없는 것처럼 꾸미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현장’이 되고 있다. 1인칭의 다큐가 요즘 절실한 이유다.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은?
99년 12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컬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연간 총기 피살자수 1만1127명이라는 기적 같은 숫자를 낳고 있는 미국의 총기문화를 시작으로, 광기와 폭력의 역사로 얼룩진 미국을 샅샅이 해부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서는 46년 만에 처음으로 2002년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당시 상영 후 13여 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는가 하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영화제 특별상인 55주년 기념상을 받았다.

 

강일석 OBS 정책기획실 PD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