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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태희 강원민방 PD 

80~90년대 초고도 성장기의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등장한 IMF. 그 이후 10년 그러니까 지난 10년과 앞으로 10년 간의 한국경제의 키워드는 역시 단 하나 ‘위기’일 것이다. 한국경제는 물론 한국인 자체가 워낙 온갖 종류의 위기 속에 살아왔던 탓일까? 이제는 위기를 위기가 아닌 ‘만성화된 일상’ 정도로 생각할 만큼 위기를 위기로 실감하지 못하는 듯 하다.

방송도 고스란히 마찬가지. 지난 20세기 말 본격적인 다채널 시대가 도래했을 때, 기존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약화를 심각하게 걱정했지만, 우려는 쉽게 현실이 되지 않았다. ‘채널이 많아질수록 소수에 영향력이 집중’되는 이른바 덴츠 보고서의 분석처럼, 다채널 시대에 지상파가 일률적으로 영향력이 약해진다는 분석은 어느 정도 환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채널 시대가 기존 지상파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감소시키기 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시청층의 창출과 확보라는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은 듯 보인다. 위기가 실체적 위협으로 진화하지는 못한 채.

그러나 현재 지상파의 위기는 다채널 시대보다 매우 영리해졌고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화되었다. 미디어 컨버전스. ‘활자와 영상’의 경계는 물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마저 허물어 낸 초고도 수준의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 IPTV만을 한정해 말하더라도 이 위기는 지상파에게 단순히 플랫폼 독점 지위를 빼앗기는 것에 그치지 않을 정도로 체감을 넘어선 심각한 위협이다. 생산자, 소비자, 미디어회사라는 미디어 시장의 3대 요소 중 최후의 승자는 소비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법은 지상파 방송이 스스로 생존자이며 소비자이며 플랫폼까지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의 구체적인 모습은 미래지각력이 뛰어난 소수를 제외한다면 그 과정과 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 같은 보통 지상파 종사자들이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의 빠른 변화의 가속도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단순히 기술변화를 현업에 적용하는 상상만으로도 신경은 쉽게 녹초가 되고 만다. 미래에 무엇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마음. 이 경우와 반대로 디지털리즘의 적응력이 너무 낮으니 소수의 선각자들에게 미뤄버리는 무신경과 외면을 보이는 동료들도 더러 있다.

준비된 자에게 미래가 있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변화중인 방송환경의 미래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미래는 ‘불확실성’의 연속체라는 사실. 무관심과 외면이 좋은 방법일 리 만무하지만, 변화의 속도와 광대함에 지나치게 주눅들어서도 주체감은 증발되고 말 것이다. 평범한 지각력의 소유자라면 ‘지상파의 미래와 대응’처럼 웅대한 단어를 생각하는 것조차 심장을 짓누르는 경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야말로 급변하는 방송환경 제 일선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위기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각자의 최대 심박수가 허락하는 수준의 고민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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