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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속에서 바라본 노숙자 24시
박종필-영상기록 다큐-인

|contsmark0|이 프로그램은 pd가 직접 1년동안 노숙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6mm 카메라로’ 촬영했다. 노숙자들과의 ‘국내상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지만, 미국 pbs와 일본 nhk에서 방영될 예정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어 그 제작기를 싣는다. <편집자>
|contsmark1|지하보도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 tv를 꽉꽉 채우던 98년.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서 노숙을 한다는 중소기업사장, 그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내와 자식들의 눈물어린 상봉, 방송은 일제히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돈을 모으자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와 함께 노숙을 했다는 한 일간지 기자는 ‘노숙자들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자"라며 그 증거로 농사일은 노숙자들이 힘들어서 안 한다고 했다. 무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니라는 생각은 내 머리를 짓눌렀다. 나는 무작정 서울역으로 갔다.서울역은 험악(?)했다. 노숙자들은 무언가에 화가 나 있었고 대책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간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공포감마저 들었다. 몰래 찍지 않는 한 촬영은 불가능해 보였다.그날부터 나는 서소문공원의 노숙자 무료배식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노숙자관련 세미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러면서 무언가 아니라는 생각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나가는걸 느꼈다.하나, 노숙자들은 남에게 알려지기 싫어한다. 왜? 일자리만 구하면 노숙을 안 할 테니까. 둘, 지금 언론이나 정부는 노숙자들을 격리시키고 기존의 부랑자로 여기고 있는데 이들은 기존 부랑자들과는 다르다는 사실. 셋, 실직하자마자 노숙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중소기업사장이 아니라 imf전부터 가난했던 도시빈민이라는 사실. 넷, 당장 이들을 합숙소나 수용시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료보험, 국민연금, 실업보험, 산재보험의 4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구축과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이제 남은 일은 형들이 나를 믿어주고 촬영에 적극 협조(?)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슬슬 형들에게 나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서소문공원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한참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문득 험악한 공기가 느껴졌다. 열댓 명의 노숙자들이 험악한 얼굴로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순간 더럭 겁이 났다. 카메라를 빼앗아 부셔버리겠다는 으름장, 짧지만 너무나 긴(?) 몇 분….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내 얼굴을 보더니 ‘어, 이 친구 배식소에서 일하는 친구 아냐?’했다. 일순간 험악했던 분위기는 가라앉고 나는 형들과 자리를 옮겨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나는 형들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절대 방송은 하지 않으며 인권영화제와 비디오판매만 하겠다’라는 것과 ‘형들의 목소리로 진실만을 말하겠다’라는 것이었다. 형들은 나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같이 살면서 우리를 봐라. 그래야 우리를 알 수 있다’. 형 아우가 돼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텐트를 가져와 서소문공원에 집을 마련하고 나는 형들의 아우가 됐다. 그렇게 촬영은 시작됐다.형들은 꼭두새벽 서울역 앞의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을 했다. 일을 못나간 날은 하루종일 할 일을 못 찾아 빈둥거렸다. 일주일에 이틀정도는 교회에서 주는 겨우 2∼3백원의 ‘구제금’을 타러 나간다. 형들은 노숙자로 보이는 게 싫어 공원화장실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형들은 매일 자신의 운명을 탓했고 모든 걸 술로 잊으려고 했고 그런 형들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설현장을 찾아다니고 ‘함바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던 일용직노동자, 실직을 해도 기댈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들, 바로 이들이 실직하자마자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래도 공원의 텐트생활은 나은 편이다. 지하보도에서 생활하는 형들은 오랜 노숙으로 몸은 말할 것도 없고 구걸이나 무료급식으로 겨우 숨만 붙이고 있었다. imf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나이가 들거나 각종 장애로 노동능력을 상실하고 노숙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실직노숙자(imf이후 실직하면서 노숙하게된 사람)들을 동정하던 사람들은 다시 언론덕(?)에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정부도 노숙을 근본적으로 청산할 방법과, 노숙 가능성이 있는 한계계층을 막는 대책은 고사하고 계속 늘어나는 노숙자들을 골칫거리로만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노숙자 대다수는 범죄자가 아니며 수용시설에서 통제돼야 할 이유도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정부정책과 파행적인 재벌경제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형들과 했던 두 가지 약속은 약간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켰다. 인권영화제에 상영을 했고 비디오제작도 끝났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전히 부채감에 시달리고 있다. 최초의 나의 기획의도, 실직노숙자에 대한 올바른 정책을 내오게 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되어야겠다는 것은 지켜졌는가. 혹시 나는 내 이름 석자 걸린 작품 하나에 지금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닐까 ….|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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