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상태바
특별기고
해당 생물에게 피해 없이 생태 왜곡 없이 제작돼야
자연다큐에 있어서 세트촬영의 기준
박수용-EBS 교양제작국 다큐제작팀
  • 승인 1999.05.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지난해 <수달> 조작 파문으로 자연다큐멘터리 제작 관행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가 크게 일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pd연합회는 최근 프로듀서윤리강령을 개정하면서 ‘자연다큐멘터리 조작’ 관련 조항을 추가한 바 있다.그런데 오랫동안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ebs 박수용 pd가 고의적인 기만과 조작은 경계되어야 마땅하나, 엄연한 제작기법의 하나인 세트촬영 자체마저 부정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글을 보내왔다. 박 pd는 엄격하고 선별적으로 사용되는 세트촬영은 수준높은 자연다큐멘터리에 긴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
|contsmark1|1. 자연다큐에 있어서 세트(set) 촬영이란?
|contsmark2|자연다큐에서 촬영대상(야생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촬영요소(카메라, 조명, 특수장비 등 촬영장비 일체)를 이동시키는 대신, 관찰과 촬영의 편의를 위해 촬영대상을 원래 서식하거나 자라던 장소로부터 촬영요소가 갖춰진 특정한 장소(controlled area)로 인위적으로 이동시켜 촬영하는 기법.예) 곤충을 실험실에서 촬영하거나 물고기를 어항에서 촬영하거나 야생동물을 특정 울타리안에서 촬영하는 행위 등.
|contsmark3|2. 세트촬영의 기본원칙
|contsmark4|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외국 선진 자연다큐 제작사들도 자연다큐에 있어서 세트촬영의 명문화된 원칙은 없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기본 명제에 따라 불문율로 지켜지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첫째, 자연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세트화된 해당 생물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세트화된 생물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피해는 자신이 야생이 아니라 세트 속에 있다는 것, 즉 갇혀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발생하므로 생물을 세트화해서 촬영해도 되는냐 안되느냐 하는 허용 기준은 주 촬영대상인 생물이 갇혔을 경우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생물학적으로, 약간의 특수한 종을 제외하고는 통상 식물-곤충-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 순으로 자신이 갇혔다는 인식의 수준이 높아진다. 외국 선진 자연다큐 제작사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식물에서 파충류까지는 세트의 서식조건(습도와 온도, 생태시간, 지형, 서식지의 크기 등)을 야생상태와 동일하게 맞춤으로써 갇혔다는 인식의 수준을 거의 제로로 만들 수 있다.(예로 독일 zdf의 <전갈>, 미국 abc의 <뱀의 세계> 등 다수) 하지만 조류나 포유류와 같은 고등동물의 경우, 야생상태와 동일한 세트를 갖춘다는 것은 그 종의 활동범위와 지능수준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조류와 포유류의 경우 완벽한 세트란 야생 그 자체일 수밖에 없으며 실제 서식지와 흡사하고 동일한 크기의 큰 세트를 만든다 하더라도 그 세트는 이미 세트가 아니라 서식지 자체를 의미없이 둘러막은 것에 불과해 기대했던 촬영의 편의를 전혀 도모할 수 없으며 세트를 꾸미는 예산의 낭비일 뿐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외국 자연다큐에서 조류나 포유류의 세트촬영된 장면을 간혹 볼 수 있다. 그것은 생태전반에 걸쳐 세트촬영한 것이 아니라 생태의 극히 촬영하기 힘든 일부분, 프로그램의 일부분에 국한된다. 자연은 신비로운 존재라서 촬영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도 최대한 야생과 동일한 상태를 만들어주고 또 그렇게 얻은 필름은 절대 남용하지 않고 극히 일부만 꼭 필요한 장면에 삽입하여야 한다.둘째, “세트의 인위적인 조건들로 인해 왜곡된 생태가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어서는 안된다.”자연에서도 동족끼리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종들이 가끔 있지만 만약 한정된 공간의 세트라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많은 종들에게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배고픔을 조율할 수 있는 세트라면 자연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새로운 먹이사슬 관계가 쉽게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갇혀있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먹이를 줘도 먹지 않고 꼼짝않는 생물의 태도를 어떤 인간적인 감정의 표현(예를 들어, 새끼를 잃은 어미의 슬픔 혹은 자기 짝에 대한 토라짐, 실망감의 표현)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또 원래 수면에서 주로 활동하는 어류가 세트에서 물의 온도차 때문에 수심 깊은데서만 활동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생태적 발견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세트의 인위적인 조건 때문에 생기는 왜곡된 생태들을 제작자들은 크게 경계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왜곡된 생태가 야생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인냥 전파를 탈 때, 시청자들에게 주는 환경적, 생물학적인 혼란과 잘못된 교육, 정보의 영향력은 그 영상의 왜곡된 리얼함 때문에 쉽게 치유되기 힘들고, 자연다큐 본래의 존재의미를 크게 훼손한다.세트에서 왜곡된 생태가 발생할 확률도 조류나 포유류같이 지능이 높은 고등동물에게서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다. 그것은 자신이 갇혀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부와 관계가 깊다. 세트에서 개미집을 촬영할 경우, 어느 정도 조건과 공간이 확보된다면 개미들은 자신이 갇혔다는 인식을 하지 못할 테고 그것은 곧 세트에서의 행동이 바로 야생에서의 행동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지만, 갇힌 것을 쉽게 인식하는 조류나 포유류는 오히려 갇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결론적으로 조류나 포유류 등 고등생물의 경우 외국에서도 세트촬영이 점점 줄어들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 이유로 첫째는 위의 두 기준을 조류나 포유류에서는 거의 지키기 힘들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조직적인 지원, 인력의 전문화, 장비의 개발, 지속적인 생태연구 등을 통해 촬영 노하우가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실제로 촬영기법이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야생에서 촬영하는 것이 세트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훨씬 수고를 덜면서도 생생한 생태화면을 얻게된다. 결국 야생에서 목표로 하는 생물에 대한 끊임없는 생태연구(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 - 빛, 계절, 시간, 장소, 습성, 먹이…)와 장비 개발, 인력의 전문화,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지원 등을 통해 촬영 노하우를 높이는 것이 지속적으로 생생한 생태화면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contsmark5|3. 프로그램에서 세트촬영장면이라는 것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가?개인적으로 외국 자연다큐멘터리스트들과 교우하면서 그리고 수많은 외국 자연다큐를 보면서 여기에도 몇가지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자연다큐의 4가지 제작방식을 설명하겠다.(주로 아래로 갈수록 촬영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지역생태 자연다큐 : 가장 기본적인 제작형태로 특정지역의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자연현상과 자연물을 다루며 주로 환경다큐적인 색채를 띤다. 선촬영 후구성이 가능한 이점이 있다. 예) <지리산의 사계> <엘파소 국립공원> <우포늪> <대암산> 등.
|contsmark6|- 종·류 생태 자연다큐 : 한 식물류, 한 동물종 전체를 다루며 주로 종 전체의 대표적인 특성에 그 의미를 맞춘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자연다큐로 선촬영 후구성의 이점이 있다. 예) <버섯-그 천의 얼굴> <거미의 세계> <늑대의 삶> <한국의 파충류> <식물의 사생활> <한국의 패류> 등- 단일생태 자연다큐 : 종 생태가 특정개체와 관계없이 종 일반을 다룬다면 단일생태는 특정 종중에서도 특정지역의 특정개체를 주인공화한다. 특대 일반을 다루면 종 생태가 되지만 a라는 지역의 a라는 이름의 늑대를 주인공화한다면 단일생태이다. 매우 드라마틱하고 한 생물개체에 인간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자연의 내밀한 곳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나 선촬영 후구성방식으로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 즉 다니면서 이 개체 저 개체 마구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특정 개체만을 지속적으로 촬영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충분한 사전연구와 치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예) <야생의 엘자> <늑대왕 로보> <물총새 부부의 여름나기>- 주제별 자연생태 : 자연에서 어떤 주제를 잡고 그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생태를 스토리로 엮는 방식, 매우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내용이 필수적이다.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철저한 연구와 준비하에 선구성 후촬영 방식만 가능하다. 예) <동물의 성생활> <생물의 사냥법> <식물도 생각한다> <잠복과 이동> 등위의 제작방식 중 다음과 같은 경우는 반드시 세트촬영이면 그 출처를 밝힌다.1)지역생태 프로그램 중 타지역에서 촬영한 경우예) 만약 지리산 사계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다른 지역에서 또는 세트에서 촬영한 장면이 있다면 환경, 생태적 왜곡을 피하기 위해 출처를 밝힌다.
|contsmark7|2) 단일생태 프로그램 중 주인공화된 생물이 다른 개체이거나 세트촬영된 경우예) a라는 사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에서 b라는 사자의 생태를 a라는 사자의 생태로 묘사할 수 없다. 특정개체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단일생태 프로그램에서느 그만큼 주인공 동일성과 사실성이 생명이다.한편, 다음과 같은 경우는 세트촬영의 출처를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ontsmark8|1) 조류나 포유류가 아닌 하등동물을 다루는 종생태의 경우,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전달이 중요할 때가 많다. 이때는 시청자들이 종개념의 정보자체에 주로 관심을 가지므로 해당장면이 세트촬영이나 아니냐, 자료화면이냐 아니냐, 어디서 언제 촬영했느냐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 때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위해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예) <늑대왕 로보>에서는 주인공 늑대 로보의 동일성이 중요하지만 종생태로 늑대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개와 늑대의 진화방식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늑대의 얼굴과 외형을 보여주며 세트촬영한 늑대장면을 사용했다고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contsmark9|2) 현재 외국 자연다큐의 경우만을 본다면, 조류나 포유류가 아닌 하등동물의 경우 세트촬영 장면의 출처를 거의 밝히지 않는다. 조류나 포유류만큼 야생이나 아니냐 여부가 생태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관심과 흥미의 초점이 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객관적인 정보전달이 주목적인 대목에만 세트촬영 장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야생에서 촬영했는지 세트촬영인지가 중요한 대목이라면 거의 그 출처를 밝힌다.|contsmark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