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송금지가처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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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인 명예훼손 가능성이 판결기준…사실 확인에 대한 노력·증거확보에 신경써야

안혁 KBS 법무팀 변호사

방송을 곤란하게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새빨간 거짓말을 전하는 제보자, 도대체 응하지 않는 인터뷰이, 취재에 비협조적인 수사기관이나 행정기관, 방송이후에 예상되는 관련자들의 집단행동이나 소송 등등.

헌데 이런 것들의 합에 알파를 곱한, 가장 곤란스러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방송금지가처분이다. 방송금지가처분은, 특정방송내용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고 그 피해가 사후에는 회복되기 불충분한 경우에 그 방송을 사전에 금지시켜 달라는 것이다(우리 헌법재판소는, 방송금지가처분제도가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 수단으로서 목적이 정당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면이 한정적이라는 점 등에서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에 해당하지 않고, 언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아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가처분이 곤혹스러운 이유는, 수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 많은 사람의 노고가 빛도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처분 여부는 그 의미에서 보듯 결국 해당 방송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것인지에 있다. 아래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에서 실제 무엇이 논의되고,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를 알아보자.
한 결핵 환자촌을 대표하는 자선사업가와 그가 운영하는 법인의 후원금 운영 실태를 고발한 프로그램에 대하여 그 자선사업가가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 들여져(이를 다른 표현으로 ‘인용되었다’고 한다) 방송이 금지된 사례가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프로그램의 맨 앞부분에 그 자선사업가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비합리적인 다른 사례를 소개하여 그 자선활동이 비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전달하는 점, 개인재산과 법인재산을 구분하여 운용하고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없음에도 횡령의혹을 갖게 하는 점, 검찰에서 수사 중인 다른 사례를 함께 소개하여 동일한 범법사실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점, 일부 법인운영의 미성숙만을 들어 마치 큰 비리가 있는 것처럼 집중 부각시킨 점 및 그 자선사업가에 반감을 가진 일부 주민들의 인터뷰와 기사만을 주된 근거로 하여 취재가 이루어진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방송내용이 진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사례를 놓고 보도를 하는 입장에서 무엇이 부족하였는지를 보면, 첫째 제기하고자 하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였고, 한 쪽의 자료에만 의존하여 취재하였다는 점(취재자료의 관점), 둘째 의혹제기임에도 혐의가 확정된 다른 사례와 같은 선상에서 보도하였고, 관련 없는 사례를 한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구성되었으며, 자선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였으면서도 특정자선사업가와 단체만을 주대상으로 보도하여 당초의 기획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점(방송구성의 관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사례로 최근의 새로운 결정의 형태로 나오고 있는 일부인용 결정사례를 보자. 일부인용이라 함은 법원에서 몇 가지 문제되는 사항을 목록으로 제시하면서 이러한 사항을 방송하여서는 안 된다 즉, 문제되는 사항들을 제외하고는 방송해도 된다는 결정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승연 회장 사건을 다룬 추적60분에 대한 가처분 사례가 있다. 당시 법원은 김 회장의 폭행의혹사건이 경찰의 수사상황 보고서나 피해자로 조사받는 측의 주장내용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은 채 김 회장의 폭행이 마치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거나 재구성하여서는 안 되며, 단정적인 표현으로 김 회장의 혐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한 보도내용 등은 방송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수사 중에 있는 사실 즉, 아직 진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불과한 것을 진실인 것처럼 보도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범죄사건 보도의 경우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이며, 이를 보도하면서 취재근거 자료를 밝히고, 당사자의 주장을 인용할 경우 일방의 주장임을 방송에서 분명히 전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표현의 관점).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라면 이러한 일부인용결정이 지나친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 일부인용 사례에서 지적된 대부분의 사항들은 평소 필자와 같은 변호사들이 프로그램 자문에서 지적하는 사항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미리 신경 쓴다면 충분히 가처분신청이 기각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울러 일부인용 사례들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 완성된 방송 대본을 토대로 문제되는 사항들을 짚어낸데 있는바, 포괄적인 방송금지를 피하는 차원에서 가급적 가처분심리 단계에서 방송내용이 충실히 반영된 자료를 법원에 제시하여 방송내용이나 표현들을 정확히 전달하여 방송내용이 진실임을 주장·입증할 필요가 있다(소송대응과정의 관점).

두 가지 사례를 통하여 나름 주의할 사항들을 관점에 따라 살펴보았다. 결국은 취재하여 보도하는 내용을 얼마나 확인하였는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전달하느냐의 문제이다.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즉, 취재와 보도의 기본은 가처분에서도 달라질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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