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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대 대통령선거가 넉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을 둘러싼 언론 보도,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알려진 방송 보도, 특히 TV 채널이 두  개 있는 국가기간방송 KBS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KBS의 보도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으나 대부분 정치 공세에 가까운 것이어서 학계에서나 방송계에서나 정계에서  공인된 것은 아니었고 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오히려 KBS  내에서는  당시 박권상 KBS 사장이 지나치게 기계적 중립을 강조했다는 불만을 제기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때 KBS의 보도 내용을 분석해 편파성 입증을 시도한 학술논문이  나와 눈길을 모았습니다. 그 논문을 쓴 이는 다름아닌 1997년 대선 당시 보도국장을 지낸 인물이어서 관심은 더 높았고, 시비의 소지도 더 많았지요.

 KBS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이사 등을 지낸 김인규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초빙교수는 ’텔레비전 뉴스의 선거보도 의제 분석-14ㆍ15ㆍ16대 대통령선거에서  뉴스 프레임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른바 ’병풍사건’에 대한 KBS 1TV 저녁종합뉴스 ’뉴스 9’의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에 관한 보도가 15대 대선에서는 19건에 그친 반면 16대 대선에서는 101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이회창 후보가 15대 대선에서는 여당 후보였으나 16대 대선에서는 야당 후보였던 만큼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의제 설정과 이슈화라는 TV 뉴스의 관행적 편파성이 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101건의 보도를 표제 유형별로 보면 47건(46.6%)의  리포트가  ’의혹제기형’ 또는 ’대립갈등형’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표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11건(10.9%)인 ’의혹제기형’ 표제는 야당 후보 관련 의혹을 표제에서부터 기정사실화하는 편파적 뉴스프레임으로, 35건(34.7%)인 대립갈등형’ 표제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선정적 뉴스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지요.

 조선, 세계, 문화, 데일리안 등 보수성향의 매체들은 이를 7월 25일부터 기사화했으며 <입증된 KBS의 ’병풍’ 편파 보도>(중앙), <김대업과 흑색선전  바람잡이들의 추억>(동아), <2002년 대선과 김대업-KBS에 관한 진실>(조선), <"KBS 대선보도는 편파보도의 전형이었다">(세계), <이런 KBS가 수신료 60% 올리겠다니>(매일) 등  사설도 게재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KBS 사원들은 선배의 논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KBS 기자협회는 성명을 통해 "논문에서는 97년 대선이 왜 공정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97년에 비해 2002년에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보도가 많다는 이유로 불공정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김 전 국장은  97년 당시 보도국장으로 이회창 후보가 여당 후보여서 좀 봐줬던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꼬집었지요. 기자협회와 함께 KBS 경영협회, 기술인협회, 아나운서협회, 카메라감독협회, 프로듀서협회 등 직능단체들도 같은 날 연대성명을 내 "김인규 씨는 곡학아세를 중단하고 조중동은 더이상 공정보도를 위한 KBS인의  노력을 폄훼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KBS 방송문화연구팀은 아예 김인규 씨 논문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따지기  위해 긴급 조사를 벌였지요. 김 교수 논문과 동일한 내용분석 방법을 사용해 같은  기간 KBS와 A방송, B방송 등 지상파TV 저녁종합뉴스, 일간지 C신문과 C신문의 관련 보도를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KBS 방송문화연구팀에 따르면 병역비리 은폐 의혹 보도가 2002년에 급격히 늘어난 것은 뉴스 가치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서 모든 언론의 공통적인 특성이라는 겁니다. KBS 분석에 따르면 16대 대선 당시 ’병풍’ 보도 건수가 A방송에서는 103건, B방송에서는 83건으로 나타나 KBS의 101건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15대 때 보도 건수는 A방송 30건이었습니다(B방송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료가 없어 조사되지 않음). C신문과 D신문은 각각 37건(15대)과 155건(16대), 56건(15대)과 195건(16대)이었지요.

 15대 때에 비하면 16대 보도 건수 비율이 KBS 5.3배, A방송 3.4배, C신문 4.2배, D신문 3.5배여서 KBS가 다소 높긴 하지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두 신문 중 하나는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고 비난받은 보수 성향의  신문인 것으로 알려져 KBS만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주제 유형별 비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 교수는 ’검찰 수사 진행상황’(30.7%)과 ’여야 정치공방’(36.6%) 등에 많은 비중을 둔 것이 "이 후보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여당의 선거 전략에 맞췄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지요. KBS  조사에서는  KBS가 각각 38.6%와 39.6%로 나왔고 A방송 21.4%와 29.1%, B방송 28.9%와 31.3%, C신문 33.5%와 25.2%, D신문 26.7%와 12.3%로 집계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KBS의  주장입니다.

 표제 유형에서는 김 교수가 문제로 삼은 의혹제기형이 KBS가 10.9%로 가장 적었다고 합니다. A방송과 B방송은 각각 35.0%와 28.9%, C신문과 D신문은 각각  14.8%와 19.0%여서 김 교수 기준대로 한다면 신문을 포함한 조사대상 가운데 KBS가 가장  공정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요.

 김대업 씨 등 관계자 육성을 그대로 인용한 빈도는 KBS가 317건으로 A방송의 168건이나 B방송의 148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KBS는 이를  "취재인력이  풍부한 방송사는 가급적 사운드 바이트를 많이 사용해 뉴스의 생동감과 보도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된 김대업 씨의 비율은 KBS가 22.8%로  A방송(20.4%)과는 비슷했고 B방송(10.8%)보다는 다소 많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2002년 병풍 보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KBS만의 현상이 아니고 주제나 표제, 육성 인용 등도 KBS가 특별히 이회창 후보에 편파적이지  않았다는 게 KBS의 반박입니다. 16대 대선 당시 KBS의 보도가 편파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 성향과 비교가 있어야 하는데 김 교수 논문에는  그것이 없었고, 또 특정 유형의 기사나 표제가 나쁘거나 좋다는 가치를 전제한 것도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에 KBS 사원들은 15대 대선이 공정했다는 전제가 없는데, 더욱이 당시 보도국장이 자신이었는데, 단지 그때보다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하는  논리는 억지 논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학문적 접근방식을 통한 공방이기 때문에 시시비비도 학문적 접근을 통해  가려졌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탄핵방송에 대한 언론학회 논문 공방을 기억하시지요). KBS 방송문화연구팀이 아닌, 훨씬 권위 있는  학술단체와 학자가 나서 비슷한 결론을 낸다 해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KBS가  편파방송을 했다는 기존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논문이 나오면 학문적으로 ’입증’된 것이고, 그렇지 않은 논문은 ’곡학아세’라고 치부하는 게 요즘 세태지요. 이런 태도는 반대편 진영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공방만 낳고 있습니다.

 이회창 "지상파 불공정 방송으로 선거에 졌다"

김인규 교수의 논문이 나오기를 마치 기다리기나 한 듯이 KBS ’편향 보도’의 희생양임을 자처하는 이회창 후보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도 대선  공정보도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모였다는 ’대한민국 방송지킴이 국민연대’ 출범식에  참석해  특강을 한 것이지요. 국민연대 공동대표인 김영용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에게 이씨를 초청한 이유를 묻자 "선거방송의 가장 큰 피해자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방송  독립에 관한 특강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하더군요. 이씨의 관련 발언 일부를 옮겨보지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방송은 매우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며 무책임한 보도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대선 기간 여권에서는 나를 상대로 온갖 비방, 중상,  모략을 했는데 모두 허위날조된 사건으로 판명났다. 김대업 병풍  의혹사건의  경우만 해도 (이것 때문에) 내 지지도가 11.8% 하락했는데 노무현 후보와의 당락 차이가 2.3%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이 같은 지지율 하락은 KBS 등  공중파방송들이 불공정하고 편파적으로 무책임하게 방송한 데 따른 것이다.

예컨대 KBS 고위직에 있던 사람이 최근에 말한 대로 병역비리 은폐의혹 사건에 관해 95일 동안 101건을  집중적으로 편파보도를 했다. 또 보도내용도 ’은폐 물증 있다’ ’비리 첩보  있었다’는 제목을 달아 방송했다. 이런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아마 그런 일이 있었는가 보다’ 하고 믿을 수밖에 없다. MBC, SBS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MBC의 경우 김대업을 마치 의인처럼 취급해 여러 차례 인터뷰하거나 출연시켰다."

 김인규 교수의 논문이 한나라당 등이 의심하던 사실을 학문적으로 입증해준  것이라고 한다면 정말 이회창 후보는 억울할 만합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한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심정이겠지요.

 이 대목에서 김 교수 논문대로 15대 때도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의제 설정과 이슈화라는 TV 뉴스의 관행적 편파성이 작용했을 텐데도(아니면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공정했을 텐데) 여당 후보로 나서 패배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겠지요.

 선거보도에 관한 공정성의 전통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앞서 과연 어떤 보도가 공정한지에 관한 학문적 분석의 틀조차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도 공정성 공방이 계속 헛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반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선거가 끝난 뒤 패배한  쪽에서 "방송의 편파보도 때문에 졌다"고 주장하고 나서겠지요.

 케이블TV가 ’공공의 적’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국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위원회가 케이블TV의 영업 행태를 두고 또 한 차례 격돌했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있던 터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IPTV 도입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더욱 팽팽하게 부딪치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방송계의 관심도 높습니다.

 공정위는 7월 25일 전원회의를 개최해 티브로드강서방송 등 태광 계열 15개  SO에 대해 모두 2억1천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CJ케이블넷 중부산방송 등 CJ 계열 3개 SO에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티브로드 SO들은 독점적으로 케이블TV를 공급하던 지역에서 저가로 공급되던 단체계약 상품의 신규 계약 및 계약 갱신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경쟁사업자가 있는 지역(부산 서구, 사하구)에서는 단체계약 상품을 계속 공급했다네요. 또 티브로드 8개 SO 및 CJ케이블넷 3개 SO는 저가형 상품에 포함돼  있던 MBC ESPN, SBS 스포츠, 드라마 채널 등 시청률이 높은 인기 채널을  고가형  상품에 편성함으로써 저가형 상품의 품질을 인위적으로 저하시켰답니다.

 그러자 소비자시민모임은 "부당이득을 취한 SO들은 소비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현재 SO의 독점화가 해마다 더 진행되고 있으므로  근본적인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정비와 행정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케이블TV방송협회는 8월 1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공정위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케이블TV는 스카이라이프와 경쟁관계에 있고 106개 가운데 34개 SO인 32%가 경쟁관계에 있는데도 공정위는 대체상품이 없는  것처럼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음 ▲케이블TV는 인프라 산업의 특성을  감안해  프랜차이즈권을 인정받는 대신 방송위로부터 철저한 사전사후 규제를 받고 있음 ▲공정위 조치는 방송위 규제와 배치될 뿐 아니라 이중규제임 ▲과거 중계유선방송사업자가 판매한  덤핑가격에 준하는 단체계약 상품을 케이블TV가 인수해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개별계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방적 해지가 일어난 것으로 이는 조속한 디지털 정착과 시장 정상화를 유도하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 정책과도 일치함 ▲채널 변경은  시청자위 의견을 받고 방송위 승인을 받아 확정하고 있으며 시청자 선호도가 높은  채널은 당연히 가격이 상승함 등이지요.

 여기에 방송위도 가세했습니다. ▲채널 편성은 시청점유율과 요금기준만으로 평가될 수 없고 공정성, 객관성, 다양성 등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음  ▲방송법에 따르면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방송편성에 규제하거나 간섭할 수 없고 방송위  감독권을 침해한 것임 ▲공정위의 조치는 케이블TV 시장의 저가요금 고착화와 방송 프로그램의 질 저하 등을 통해 영상산업 전체의 경쟁력 훼손을 가져올 수 있음 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공정위의 송상민 경제분석팀장은 다시 자료를 내 반박했지요. ▲케이블TV 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17.6%로 제조업 평균인 7.6%보다 두 배 이상 높음  ▲홈쇼핑 업체로부터 송출 수수료 명목으로 받는 돈과 인터넷 서비스 수입이 있기  때문에 수신료까지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함 ▲최근 케이블TV  업체들이 수신료 인상과 일방적인 채널편성 변경 등 물의를 빚는 이유의 하나는 무리한 인수 합병에 따른 후유증임 ▲지역별로 독점이 이뤄지고 나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규율이 불가능해짐 ▲위성방송, IPTV 같은 새로운 매체가 케이블TV 업체와 실질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함 등이 골자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설명드렸듯이 요금 인상이나 채널 묶음 변경 등의 문제가  최근 빈번하게 불거지게 된 것은 디지털 전환과 함께 단체계약에서 개별계약으로  바꾸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티브로드나 CJ케이블넷, C&M 등 대규모 MSO들이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보니 군소업체보다 더 횡포가 심해 보일 수밖에 없지요. 공정위가 보기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비칠 만합니다.

 공정위의 생각대로 경쟁하는 지역에 있다 보면 시장 선택권도 넓어지고  급격한 가격 인상이나 채널 변경도 줄어들겠지요. 그러나 단체계약만 따져 보면 케이블TV협회의 주장대로 오히려 디지털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 가입할 기회를 빼앗는  처사여서 공정위 논리에 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사는 지역에 군소 SO만 있다면 싼 가격에 인기 채널을 볼 수 있는 혜택은 누리겠지만, SO가 디지털 전환에 투자할 생각이 없어 케이블TV를 통해  쌍방향 서비스 등을 누릴 기회는 봉쇄되겠지요. 산업적으로 어느쪽이 더 바람직한지는 제쳐두더라도, 과연 어느 쪽 시청자가 더 행복할까요.

 그런데 방송위가 케이블TV를 ’두둔’할 때 방송위에 힘을 실어주려면 케이블TV들이 말 그대로 독점의 횡포를 줄이려는 자정 노력을 해야 합니다. 케이블TV협회가 반박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로 모든 SO들이 채널 변경을 할 경우 시청자위  등을  통해 의견을 받고 하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방송위의  철저한  사후 규제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숱하게 방송위의 지적을 받아온 점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당장 퇴출시켜야 할 상황인데도 가입자 피해를 우려해 울며 겨자먹기로  재허가추천을 해준 사례도 수두룩하지요.

 공정위, 방송위 등의 게시판에 가보면 케이블TV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게  쌓여 있습니다. 7월 26일 MBC TV ’불만제로’에서는 "깡패나 다름없다" "시청자들이  봉도 아니고…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 등 시청자들의 불만이 여과 없이  방송됐습니다. 4천 원 이하의 의무형 상품을 고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가입  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SO도 있었고, "채널 편성 변경에 대한 항의 전화를 받으면 선호도 조사에 따라 했다고 거짓으로 둘러대라"는 콜센터 직원 교육 내용도 폭로됐지요.

 방송 내용 가운데는 케이블TV를 포함한 방송시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도 있었고, 경쟁사업자로도 볼 수 있는 지상파방송사의 시각에 무게가 실린  대목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대다수 케이블TV 시청자로서는 속이 후련한  내용이었고, 반대로 SO들로서는 가슴이 뜨끔했을 겁니다.

 3년 전 혼란 되풀이하게 된 재허가추천 심사

 강원민방(GTB)의 정세환 이사회 의장이 8월 2일 이사회에서 상임이사 및 의장직 사임 의사를 밝혔답니다. 2004년 재허가추천 심사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견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2006년 3월 비상임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상임이사에 취임했는데, 다시 문제가 될 듯하자 시비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물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GTB 해고자 3명은 정 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과 국세청, 방송위 등에 제출했습니다. 정 회장이 불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이중 일부를 로비 자금에 사용했으며, 본인 소유의 지분 30% 중 10%를 우리사주조합에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회장이 이들의 주장을 인정하지는 않고 있고, GTB도 이 때문에 사의를  밝힌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진정에 대한 당국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데다 재허가추천 심사가 곧 진행될 예정이어서 부담이 됐을 겁니다.

 2004년 경인방송(iTV)이 방송위로부터 재허가추천이 거부돼 정파의 비운을 맞았지만, 심사 결과로만 따지면 사실 GTB가 iTV보다 먼저 퇴출될 만했지요. 심사위원들의 채점 결과 합격선인 650점(1천점 만점)에 못 미친 방송은 GTB, iTV와 함께  CJB(청주방송) FM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GTB는 방송법 18조에 따른 허가 취소 사유가 명백해 유일하게 먼저 청문 대상에 올랐지요.

 GTB는 최대주주인 ㈜대양(회장 정세환)이 2001년 허가 당시 차명계좌를  이용해 방송법상 지분한도(30%)를 넘는 주식을 보유한 혐의가 드러났으며, 3년간  주식이동 금지라는 허가조건도 위반했다고 합니다. 또한 허가 당시 약속한  방송문화원  설립 계획 등도 추진하지 않았다고 지적받았지요.

 재허가 기간 이전에라도 방송국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사유(허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가 드러난 GTB가 재허가추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배주주의 반성과 시정 약속, 노사 합의 등의 덕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강원도민의 시청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iTV는 다른 지역에 비해 채널 하나를 더 보고 있었지만, GTB가 문을 닫으면 강원 도민들은 로컬프로그램은 둘째치고 SBS를  볼 길이 막막하거든요.

 진정 내용의 진위를 따지고 그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은 당국의 몫일 겁니다. 방송위도 재허가추천 심사과정에서 관련 자료와 의견진술을 검토하고  필요하면 청문도 할 겁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이런 문제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처리되지도 않다가  재허가추천 심사를 앞두고서야 공론화되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사주나 경영진  입장에서는 재허가추천 심사를 이용해 일부 불만분자가 투서를 하고 노조도  힘을  행사하려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얘기해서는 들어주지 않으니 그러는 것이겠지요.

 만일 진정 내용에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재허가추천 심사의 효용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허가기간 3년이 너무 짧으니 늘려달라는 한국방송협회의 건의가 무색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재허가추천 거부 대상 방송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3년 전 iTV를 퇴출시킬 때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성했는데, 결국 아무런 준비 없이 재허가 기간 마감을 맞게 됐네요. iTV처럼 불행한 사례가 또 나오든지, 시청권 때문에 부적격자에게  방송을 또 맡길 수밖에 없는 사례가 반복되든지 3년 전의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올해 지상파방송 재허가추천 심사 대상은 41개 방송사업자, 576개  방송국(연주소 292개, 중계소 284개)이라고 합니다. 국내의 지상파방송사업자는 올해  재허가추천을 받은 OBS경인TV까지 43개인데 OBS와 함께 제주의 아리랑 영어FM은  심사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방송위는 8월 중 심사기준과 심사위원회 구성 및 운영계획을 의결해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심사위를 운영하고, 9월 말 재허가추천을 심의 의결한 뒤 10월 중  사업자와 정통부에 결과를 통보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큰  문제가 없을 때 얘기겠지요. 3년 전 iTV에 대해 재허가거부 결정을 내린 것은 허가기간  만료를 열흘 앞둔 12월 21일이었습니다.

 이희용/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heeyong@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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