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드라마가 현실을 견디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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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드라마가 현실을 견디는 법
  • 신주진 드라마 비평가
  • 승인 2007.08.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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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진 드라마 비평가

최근에 영화 <화려한 휴가>의 성공적 드라마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감회에 휩싸였다.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드디어 드라마라는 허구 안으로 온전히 안착될 만큼 시간적, 심리적 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거기에는 책임소재나 진위공방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피해자와 방관자의 자괴와 부채의식에서도 자유로운, 맑은 눈으로 다시 쓰는 역사의 진실이 있었다. 드라마라는 틀 속에서 건져 올린 감정적 울림의 진정성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또한 시대의 상흔이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되어 가는 현장을 목격해야 하는 슬픔이 남았다.

현실이 과도한 힘으로 우리를 짓누를 때, 그것이 삶의 형태와 방식을 비틀고 바꾸어 놓을 때, 드라마 안에 밀려드는 현실의 침입을 보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이는 드라마와 현실을 잇는 동시대적 감수성이나 징후 같은 산뜻하고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참혹하거나 비루하거나, 적대감이거나 치욕이거나, 그것은 드라마에 각인되는 피할 수 없는 외상이다.

드라마가 이러한 현실을 견디는 방법은 환상이라는 가공을 거치거나 아니면 풍자나 아이러니의 형식적 우회를 통하는 것이다. 환상이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면, 풍자나 아이러니는 웃음을 무기로 비뚤고 일그러진 현실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침해하지 않도록 드라마는 현실과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풍자 코미디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교육현실은 너무 적나라하고 외설적이어서 차마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위압적인 초고층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강남의 중학교는 교육이 어떻게 경제논리와 파워게임으로 흘러가는가, 무한경쟁시대 개개인의 이기심이 어떻게 지역적·계층적 위계화와 집단적 광기로 나타나는가를 뚜렷이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블랙코미디임을 보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하고 위화감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처절한 현실에 너무 가까이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스스로가 강남이라는 블랙홀에 이미 빨려들고 있음을 힘겹게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 강력한 자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확실히 이 드라마는 풍자의 기술이 현실의 압도적 힘을 가까스로 견뎌내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지점에 있다. 드라마가 자주 로맨틱코미디의 삼각모드에 의지하는 것은 드라마 스스로가 현실을 버텨내는 안간힘 같은 것이다.   

반면 〈황금신부〉는 베트남 처녀라는 이주민 여성의 현실을 가족멜로의 완성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 마음씨 곱고 생활력 강하며 헌신적인 베트남 여성은 2대에 걸쳐 연적으로 얽힌 상처와 모순투성이의 두 가족을 치유와 화해로 이끌어야만 한다. 그녀에게 가족멜로 여주인공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드라마는 이주민 여성의 현실에 대한 우리의 환상-그녀도 우리와 똑같은 여성이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을 구축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베트남 여성은 달콤쌉싸름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대신 남루한 희생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만다. 이는 남자주인공이 심리적 상처를 지닌 싸가지 왕자가 아니라 공황장애를 가진 진짜 병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애초에 로맨스의 판타지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로맨스가 실패하고 드라마의 환상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진짜 현실이 들어온다. 한국이라는 배타적 가족공동체의 오점으로 위치하는 이주민 여성의 현실이. 우리는 이를 반겨야 할 것인가? 대답은 시청자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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