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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몽상가의 운명’
김도훈-MBC 드라마국
  • 승인 199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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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난 이제 겨우 3년차 ad이다. 96년에 입사해서 21세기를 앞둔 시점에 <전원일기>라는 20세기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하고 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을 하면서 지녀왔던 수많은 단상들은 너무나 파편화되어서 이젠 잘 생각도 나질 않지만, 그래도 남들만큼 크게 고생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리 부서엔 너무나도 고생을 많이 한 선배들이 즐비하게 책상머리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드라마국에 지원했을 때, 별 생각이 있었겠는가? 그저 대학 시절 한 것이라고는 소극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어줍잖은 연극작품들을 올린 것밖에 없으며,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영화 보는 것과 음악 듣는 것, 소설 읽는 것 등등인데, 달리 무얼 하겠는가? 어찌 어찌하여 운 좋게도 mbc에 합격까지…. 그래서 난 드라마국에 왔다. 정말로 개인적인 단순한 취향 때문에. 나의 이런 자질들을 멋지게 발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첫날부터 수난이었다. 수습기간 동안 바로 위 선배들로부터 나의 희망을 무참히 깨는 소리를 계속 들어왔지만, 그래도 설마 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의 인생은 내가 설계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드라마국 사람들은(특히 ad들) 농담반 진담반으로 스스로를 ‘노가다’라고 부른다. 하는 일의 성격상 야외 촬영현장에서 발로 뛰는 일이 많아 그렇겠지만, 업무의 하중이 상당한 탓에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틸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내가 처음 들어와서 느낀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은 너무나 너저분했고, 사람들은 늘 감지 않은 머리를 모자 속에 감춘 채 살기어린 눈으로 배회하고 있었다. 촬영현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정신없이 찍어서 방송을 내야 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 욕설과 상소리가 난무하는 상황. 나는 어느 누구 하나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 일터에서 생전 처음 접하는 fd라는 사람들과 뛰어다니며 차를 막고, 모여서 떠드는 동네 주민들을 제지하고, 혹 술이라도 먹고 와서 연기자에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나타나면 몰래 골목으로 끌고 가 한대 쥐어박는 역할을 수행해 내야 했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연기자에게 사정사정해서 하루라도 더 촬영 스케줄을 빼내야 하는 일.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늘 드는 생각. ‘도대체 내가 왜 여기 들어왔지?’모든 건 결과로 설명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건 pd는 ad가 하루라도 더 연기자의 촬영 스케줄을 빼내길 원하고, 현장이 찍을 수 없는 장소라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찍도록 해주길 바란다. 그게 pd의 마음이다. 한번 작품에 몰입하면 눈이 돌아버리기 때문에. 작품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의 방송프로그램 제작현실은 상당히 전근대적이다. 일종의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내가 연출자로 데뷔할 때 나는 과연 얼마만큼 그런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런 고민도 ad에게는 사치다. 연출 데뷔를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산다면, 어찌 그 모든 괴로움들을 감당해 내겠는가? 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마취 혹은 가수면 상태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게 ad의 운명이다. |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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