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중계 제1회 목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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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중계 제1회 목동포럼
‘언론권력과 방송개혁"
“방송개혁하려면 노예근성부터 청산하라”
강준만 교수 권위주의 굴종·거대담론증 등에 통렬한 질타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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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방송회관에서는 ‘언론권력과 방송개혁’이라는 주제로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의 강연회가 열렸다. PD연합회와 방송진흥원이 공동주최하는 ‘제1회 목동포럼’으로 거행된 이날 강연회에서 강 교수는 ‘방송개혁을 위해선 거대담론을 버리고 방송계 내부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계 내부의 자성의 기회가 될 강 교수의 강연내용을 요약·정리하여 싣는다. <편집자>방송내부에 만연한 ‘수동적 태도’ 타파해야여기 계신 분들 다수 또 민주화 투쟁을 했던 분들에게도 권위주의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로 뿌리내린 ‘권위주의’, 이것이 모든 개혁과 민주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주의 체제하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성은 수동성입니다. 과거 정권들의 혹독한 탄압에 대항하여 투쟁하던 민주화 운동세력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사라지니까 맥이 완전히 풀려버린 것입니다. 싸워야 할 적이 사라진 것입니다. 보수적인 시민운동단체에게 모든 영역을 내주고 무엇을 해야할 지를 모르고 있습니다.과거 어려울 때 방송노동운동이 보여준 태도는 고개가 숙여지게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화 세력이 안고 있던 문제를 그대로 방송노동운동이 그대로 안고 있다는 이야깁니다.만약에 지금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면 그 방송이 띠게 될 정치적 색은 무엇입니까? 방송노조가 가진 도덕성 수준의 반의 반이라도 방송사 상층부에 관철시킬 자신이 있습니까? 건국이래 최초의 수평적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방송개혁진영이 달라진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머리를 써야 했습니다.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이라고 하는 박노해 시인의 이야기가 제가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박노해라고하는 화두가 앞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개혁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운동을 하신 분들이 달라진 상황에 대해서 무력감을 느끼고 주저앉은데에 비해서 박노해는 처절한 변신을 해서라도 자기의 ‘야심’을 달성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박노해의 문제는 달라진 운동환경에 대해서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뜻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방송개혁을 위해서 투쟁하는 분들도 6월항쟁 이후의 패러다임에 대해서도 바꿀 뜻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기존의 방송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이 달라지는 방송노동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대담한 변신을 요구합니다.방송인들이 현재 한국방송이 안고 있는 문제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나서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마음 속에 있는 권위주의 체제입니다. 그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수동성입니다. 저는 그래서 ‘수동성의 미학’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봤는데요. 근본적인 문제가 방송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의 진보지식층이 갖고 있는 거대담론증을 방송계 사람들도 갖고 있어요. 자꾸 제도면에서만 접근해옵니다. 제도만으로는 안됩니다. 이것은 조직의 문제입니다. 어느 순간 방송인들의 마음이 ‘이것은 아니다’라고 바뀐다면 그날로 방송개혁이 되는 것입니다.정권에 대한 방송개혁책 마련지금 문화방송 민영화를 놓고서 권력의 방송장악 음모라고 그러는데 ‘과연 그 음모가 정치적 장악을 위해서 나온 음모일까’ 생각할 때, 이것은 정서적 차원의 음모입니다. 강원용 목사와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노선이 반영된 아이디어였습니다. 민영화를 좋게 보는 집단입니다. 그러면 그 민영화 주장을 일시에 격파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기 위해서는 왜 저쪽에서 민영화를 주장하는지 분석해 들어가야 할 것 아닙니까? 김정권이 방송개혁을 직접해서(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개혁된 방송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방송으로 하여금 사회 전반의 개혁을 이루게 한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모범답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김정권이 내린 결론은 그것은 수지가 안맞는 장사라고 본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역대 정권들이 해왔던 길을 그대로 가겠다는 것입니다.우리 방송에 관한 담론이 너무 도덕주의 적이고 겉돌고 있습니다.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방송개혁에 대한 새로운 ‘카드’를 마련해야 합니다.제가 볼 때 방송개혁을 염원하는 방송인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방송귀족’이라는 이미지의 문제입니다. 방송인들이 IMF 체제하에서 고통분담은 전혀 없이 그야말로 귀족으로서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 타당하다면 방송인들은 무엇인데 고통분담을 안 하는 것이냐입니다. 이전에 우리사회의 공룡조직 공기업체들이 갖고 있는 각종 비능률, 집단이기주의가 한참 신문에 오르내렸습니다. 국민들은 공기업 조직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영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그런 집단주의 이기주의와 탐욕의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요. 그러면 진작 공영방송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공영을 지키기 위해서 경고를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주도권을 찾아와야 합니다. 진정으로 방송개혁에 애정이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신문개혁, 방송이 나서야방송개혁의 암적인 존재는 신문입니다. 앞뒤가 안 맞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도덕주의적인 방송을 만들라면서 민영화에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방송개혁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잇속만을 챙기고 있습니다.입법 사법 행정 삼부라고 합니다. 이 삼부를 언론이 감시합니다. 민주주의 기본원칙 아닙니까? 언론을 가리켜 제4부라고 합니다. 방송은 신문이 감시해 줍니다. 과한 정도입니다. 신문에 대한 감시를 누가 합니까? 신문에 대해서 비평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사태를 보니까 정말 위력이 대단합니다. 방송, 그 힘 두었다 어디다 씁니까? 그 가공할 위력을 신문에게 쓴다면 하루아침에 끝납니다. 방송의 신문에 대한 노예 근성, 그 노예 근성이 권력에 대해 굴종해왔고, 기존의 관행에 대해서 굴종해왔고, 주변에 복잡다단한 일에 귀찮아서 굴종해버린 수동성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송개혁의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방송 민주화 개혁을 원하는 분들이 거대 담론에서 탈피해 주기를 원합니다. 조직의 문제가 정말 중요합니다. 조직에서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방송개혁의 주체는 방송인들이고 사람이지 법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우리 방송계가 처한 현실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방송 개혁에 힘쓰는 분들에게 방송개혁에 대응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시도에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서 과거와는 조금다른 어떤 운동 방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약·정리 : 이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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