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정치가 실종된 교양이 가장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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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정치가 실종된 교양이 가장 정치적이다
  • 김재영 MBC ‘불만제로’ PD
  • 승인 2007.09.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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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MBC ‘불만제로’ PD
 
현재 강력한 여론 지지도를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후보가 결국 승리를 거두었고, 이제 상대방의 후보가 결정된 상태에서 지지부진한 지지도에 시달리는 범여권의 경선이 시작될 차례. 대통령 선거가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정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원내 제2당이자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후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의혹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다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개발독재시대의 부동산 투기 의혹, 유신과 5·16에 대한 정치적 판단, 주가조작 의혹  등 후보들을 둘러싼 의혹들의 깊이는 깊었고, 대중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층적인, 그러면서 객관적인 보도를 원했다. 중계방송식 폭로전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 전후 상황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조언자가 대중에게는 필요했다. 하지만, 2007년 현재까지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은 그 역할을 외면했다.

필자가 속해있는 MBC를 비롯해 방송 3사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후보들의 각종 의혹에 대한 심층보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상대적으로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몇몇 독립신문사들의 특종성 보도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 외면한 것일까. 취재할 내용과 대상, 그리고 엄연히 객관적 사실들이 존재하는데도 그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그것을 엮어서 프로그램화(化)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무서웠을까. 그 누군가가 대통령후보로 확정되고, 또 그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을 생각하는 것일까. 자조가 섞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들이 만약 국무총리나 장관 후보였다면 아마도 그 의혹들의 정체를 언론에서 파헤치지 않았겠냐고.

그리고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검증은 오직 검찰의 몫이 되어 버렸다. 언론은 다만 검찰의 손가락만을, 입만을 바라보아야할 처지가 되어 버렸다. 실제로 한나라당 후보 검증 국면에서 언론은 검찰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검찰이 항상 사실만을 이야기하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검찰과 사법부를 감시하고 그들이 묻은 진실을 캐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오히려 현재의 검찰 시스템이 언론에 비해서 훨씬 정치적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했다. 오호라, 정치적인 중립을 지킨다는 게 이유란다. 가치판단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란다. 같은 당에서조차 각종 의혹들이 물밑 듯이 쏟아져 나오는데, 무슨 정치적 중립일 것이며, 밝혀낸 사실만을 가지고 사실 보도만을 하는데 가치판단 운운은 무슨 말인가.

한국 언론이 이제 권력으로부터 독립했고, 앞으로는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국면에서는 이런 논의가 얼마나 앞서나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시사교양프로그램 조차 “정치”를 외면했고, 저널리즘의 일반원칙을 저버렸다. 필자는 단언한다. 현재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행하고 있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며 가치판단이 개입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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