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PD의 영화이야기
상태바
홍PD의 영화이야기
빨간 약 줄까? 파란 약 줄까?
‘매트릭스’를 보고…
홍동식-MBC 라디오국
  • 승인 1999.05.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빨간 약은 가짜 인생을 거부하고 진실을 찾아 나서는 고행의 각성제요, 파란 약은 가짜 인생을 받아 들이고 허위 속에 안주하는 몽환의 최면제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현실과 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네오"는 빨간 약을 삼킵니다. 그래야만 영화가 영화답게 전개되니까요.때는 1999년, 대기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인 동시에 컴퓨터해킹의 도사 ‘네오’인 ‘그’(키아누 리브스)는 어느 날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이상한 메시지를 전달 받습니다. ‘그’는 심심풀이로 흰토끼 문신을 팔뚝에 새긴 여인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 일들을 겪게 됩니다. 검은 안경의 비밀요원들이 ‘그’를 잡아 가두고… ‘모피스’라는 인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협박하고… 심지어 ‘그’의 뱃속에 추적장치까지 집어넣습니다. 놀라 깨어난 ‘그’는 자신이 자신의 방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꿈인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인 것 같기도 하고… ‘그’는 헷갈리기만 합니다.그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모피스’가 등장해 혼란에 빠진 그에게 설명합니다.“지금은 2199년이고, 니가 사는 1999년은 가상현실이다. 2199년은 인공두뇌(a.i:artificial intelligence)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인데,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인공자궁안에 갇혀 a.i컴퓨터의 에너지로 사용된다. 대신 a.i 는 인간의 뇌속에 가상현실 프로그램 즉 ‘매트릭스’를 입력해놨다. 다시 말해 니가 현세라고 믿고 살고 있는 1999년은 ‘매트릭스’가 꾸며 논 가상현실일 뿐이고, 검은 안경의 비밀요원들도 실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사이보그다. 그리고 지금껏 가상현실 구석구석 너를 찾아 다녔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지배하는 이 지옥같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가 바로 너이기 때문이다."그러면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을 꺼냅니다. ‘그’는 빨간 약을 삼킵니다. 그리고 1999년의 가상현실과 2199년의 진짜 현실을 넘나들며 인류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게임을 시작합니다.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일을 깡그리 할 수 있을 것 같이 과대평가되는 세상이라 그런지 사이버라는 접두어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가수, 사이버 탤런트, 사이버 게임, 사이버 섹스…. 이런 세기말의 조류에 영합한 영화 ‘매트릭스’는 아마 사이버 스페이스를 다룬 금세기 최고의 오락영화일 듯 싶은데요. ‘제2의 코엔 형제’라고 불리우는 올해 서른 네 살의 래리 워쇼스키와 서른 한 살의 앤디 워쇼스키 형제가 바로 이 영화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들은 타란티노류의 비디오 키드답게 대중문화와 상업주의의 접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재주가 있어 보입니다. 데뷔작 ‘바운드’에서 느와르와 갱스터와 레즈비언을 적절히 뒤섞더니, ‘매트릭스’에서는 서구식 sf의 토대위에 홍콩느와르와 컴퓨터게임과 동양격투기와 일본 애니매이션을 뭉뚱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엔 ‘스트리트 파이터’를 비롯한 온갖 컴퓨터게임과 오우삼과 주윤발과 ‘공각기동대’와 ‘제5원소’와 이소룡과 소설 ‘링’과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이 반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반죽 위에 워쇼스키 형제는 신화와 성경을 소스로 살짝 흩뿌립니다. 그래서 자세히 뜯어보면 2199년의 세상은 지옥처럼 어둡고 습하며, ‘매트릭스’를 피해 소수의 선택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의 이름이 바로 ‘시온’(zion)입니다. 또 ‘모피스’는 ‘모세’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모피스’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는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 즉 하느님 같습니다. 게다가 사랑을 믿지 않던 여전사 ‘트린’이 죽었던 ‘그’를 키스로 되살리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이 아닐까 여겨집니다.이런 잡탕의 장르에 현대의 테크놀로지가 덧씌워지면서 영화는 입이 딱 벌어지도록 찬란한 빛을 뿜어냅니다. ‘그’가 날아오는 총알을 춤추듯 피하고, ‘트린’이 학처럼 우아하게 날아올라 공중에서 멈출 때, 카메라는 360도 회전하면서 완벽한 시각적 서비스를 베풉니다(이 장면들은 120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작동시켜 1초에 100프레임씩, 도합 1만2천 프레임을 찍는 초고속 촬영방식을 썼다고 합니다). 또 날아가던 총알이 멈추고, 건물 벽을 옆으로 달리고, 왕년의 ‘왕우’처럼 공중을 붕붕 날면서 인간과 사이보그가 대적합니다. 꼭 만화같지요? 하지만 그럴 듯 합니다. 왜냐? 영화 자체가 가상현실 속의 게임이니까. 그래선지 ‘버라이어티지’는 ‘매트릭스’를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영화는 어른들이 보기엔 황당하고 유치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골치 아픈 세상을 잠시 잊고 싶을 땐 가끔씩 이런 영화로 번잡한 뇌를 청소해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그나저나 꿈을 현실로 바꿔주는 빨간 약이나 현실을 꿈으로 바꿔주는 파란 약 갖고 있는 사람 어디 없나요?※매트릭스(matrix) : 1. 주형, 모형 2. 자궁 3. 입, 출력 도선의 회로망지금까지 홍 pd의 영화이야기를 집필해 주신 홍동식 pd와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contsmark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