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아프간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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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아프간 斷想
  • 김현정 CBS PD
  • 승인 2007.09.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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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CBS 〈이슈와 사람〉 PD
 
#1. 2002년 겨울. 인도 남부 마을에 차려진 의료캠프.
“큰 일 이야. 발을 빨리 절단하지 않으면 다리 전체를 잃게 될지도 모르겠어.
아이의 발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엄지발가락 바로 윗부분인데 얼마나 많이 썩었는지 거의 구멍이 뚫린 정도였다. 도대체 이 발로 어떻게 한나절을 걸어서 이 캠프까지 왔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이다. 난 참 미안하게도 고개를 돌렸다. 도무지 눈 뜨고는 볼 수 없어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다음 아이는 돌을 갓 넘긴 여자 아이다. 언뜻 봐도 아이의 한 쪽 눈은 정상이 아니다. 누렇게 곱이 낀 눈에 까만 눈물이 고여 있다. 주변에 파리가 모여들지만 아이의 엄마는 그 파리조차 쫓을 힘이 없나보다.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두 아이 모두 항생제 한 알 만 있었으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가벼운 염증에서 시작했다. 대부분이 이런 식의 가벼운 질병을 치료하지 못해 골병이 든 사람들이고 평생 처음 의사를 만나는 사람들이다. 2주의 기간 동안 우리는 200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취재차 이 봉사캠프에 참가했던 나는 그 다음해에는 일부러 휴가를 내서 허드렛일이라도 돕겠다고 나서야 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2. 2007년 여름. 아프간 피랍 사건을 보며 이런 저런 논란들이 불거졌다. 그 중 하나가 단기로 떠나는 봉사활동의 실효성 문제이다. 나 역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얻은 답은 단단히 준비하고 떠나는 봉사활동은 분명 ‘유효하다’는 것이다.

20여명의 팀원들이 각각 이민가방으로 한 가득 씩 가져가는 각종 항생제며 감기약, 진통제라면 그 곳 주민 천 여 명이 1년을 버틸 수 있는 분량이다. 외부세계에서 배달되는 구호물자들은 대개 중간 관리들에게서 새어나간다. 따라서 우리가 짊어지고 가서 그들 손에 직접 쥐어주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 뿐 아니다. 경상도만한 지역에 병원이 한 곳도 없다. 평생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따라서 1년에 한번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평생 병원구경도 못한 이들에게 1년에 한번이 정기적이기만 하다면 결코 적은 기회가 아니다. 

시혜하듯 짧은 기간 다녀오는 봉사가 진정한 봉사냐고 묻는 건 1년에 한번 귀한 휴가를 내어 떠나는 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물음이다. 물론 생업을 놓고 장기간 봉사를 떠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더 큰 물질로 돕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해보겠다는 이들을 싸잡아 ‘효과 없는 단기 봉사’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

물론 준비 안 된 무분별한 활동은 지양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인해 항생제 한 알이면 살릴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외면당하지는 않을지… 내내 그 인도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떠올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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