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내겐 너무나 무서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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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내겐 너무나 무서운 사진
  • 한재희 MBC PD
  • 승인 2007.09.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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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희 MBC 라디오편성기획팀 PD

나름대로 신문이라는 것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아마 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최고로 재미있는 건 물론 프로야구 기사였고 ‘블론디’니 ‘왈순아지매’류의 만화도 그저 생각 없이 봤던 것 같다. 조금 더 커 엉큼한 나이가 되고 부터는 연재소설과 삽화에 눈이 갔다. 제5공화국 시절, 신문 연재소설들은 참으로 야하기도 했다. 심지어 삽화도 야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신문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뜻밖에 아주 ‘무서운’ 사진과 마주치게 된다. 대략 이런 기사였던 것 같다. 어떤 사진가가 치정관계인 여성을 야산으로 데려간다. 독극물을 먹이고는 몸부림치는 장면을 촬영한다. 사건 자체가 너무나 엽기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신문 상단에 실린 사진들이었다. 독극물을 먹고 몸부림치는 여성의 사진이 연속으로 서너 장 지면에 실려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배배꼬인 몸의 윤곽이 떠오르는 걸 보면 어린 눈에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철이 든 후, 그래서 신문의 ‘내용’에 관심을 두고 읽게 된 이후로 신문은 내게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해외토픽에 실린 사진들은 갈수록 온순해졌으며 연재소설은 아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물론 ‘강안남자’ 같은 다크호스들이 등장했지만, 뭐, 충격까진 아니고 나름대로 신선했다.

기억 속에 묻혀있던 그 ‘독극물 살인사건’을 되살리게 된 건 지난 주 살굿빛 석간신문에 실린 어느 사진 덕분이었다. 마치 신체절단 마술처럼 시커먼 네모 바깥으로 튀어나온 머리와 팔 다리, 산 자의 것인지 죽은 자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배시시 웃는 얼굴… 우습게 느낀 사람도 있고 지저분하게 느낀 사람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 신정아 누드 사진은 ‘무서웠다’. ‘아이들도 보는 신문에 어찌 이런…’,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스러운데…’ 이런 생각은 한참 뒤였다.

공포심의 연원은 사실 간단했다. 상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원래 미지(未知)의 것을 두려워하는 법, 짐작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위협과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것이 공포영화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상상 밖’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일이야 세상에 많지만, 내게 그 두 사진은 좀 달랐다. 말하자면, 내 온 의식과 무의식의 바닥을 아무리 들쑤셔 봐도 건져 올릴 수 없을 만큼, 정말로 상상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경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일이라고 떠들던 살굿빛 신문은 여전히 ‘인권’이니 ‘민심’ 따위 말로 지면을 채우며 건재하고 있다. 다른 언론들은 ‘누드사진 합성 논란’ 운운하며 후속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PD수첩〉의 취재윤리를 들추어내고, 삼성 비자금 파일을 도청사건으로 뒤바꿔 버리던 그 출중한 능력은 지금 감쪽같이 사라졌다. 자정능력은 찾아 볼 수 없다.

공포영화에서 괴물이나 살인자는 종종 화면의 바깥에 존재한다. 오히려 화면 안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그들이 제거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의미한다. 정파를 넘어, 논리를 넘어, 상식을 넘어, 인간의 본성까지 위협하는 대상이라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다. 언론은 지금 스스로가 어디까지 왔는지 ‘무섭게’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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