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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오늘도 사람들은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을까? 화면이 뜨자마자 아직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눈을 비비며 이제는 너무나 친숙해서 자기 이름보다 더 자기 이름 같은 ‘신정아’를 찾았을까? 위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억지로 참으며 강요된 ‘알 권리’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을까?

‘부적절’한 방식으로 문화계의 주요 인사가 될 뻔한 한 30대 중반 여성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분기탱천한 언론사들 때문에 요즘 한국 사람들은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이들의 분기탱천은 명백한 ‘신정아 중독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억측을 길어내던 상상력조차 바닥이 나니까 ‘커리어 우먼 섹스 활용, 성공에 효과 있나 없나’(중앙일보, 9월 18일자)라는 기사까지 제조해 내고 있지 않은가. 기사는 “신정아씨의 가짜 학력 파문으로 전문직 여성들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직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활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여자는 물론 ‘여자’일 테고, 그 배경이 되는 것은 ‘소파승진’일 터이다. 그리고 이 ‘여자’는 가부장제가 지치지도 않고 음험하게 상상하고 판단하고 재단했던/하고 있는 ‘그녀들’이다. 더 읽어보나마나 뻔하다. ‘신정아’식 ‘유혹 전략’은 장기적으로 보아 추천할만한 전략이 아니니, 정신 차리라는 이상한 훈수를 두고 있다. 신정아 누드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아직도 이 정도 수준?’의 어이없는 심정이었다면 이 기사는 ‘역시나!’의 참담함을 불러일으킨다.

신정아 씨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행태와 한국사회의 반응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다. 정몽구, 김승연 재벌회장들의 치명적인 범법행위는 코미디 수준의 ‘관용’으로 처리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온갖 비리 의혹은 국민들의 ‘알 권리’와 무관한 것으로 사소하게 만들면서 신정아 ‘스캔들’에 중독되는 사법부와 언론사들에 대해.

그리고 한국사회의 학벌주의, 미국을 비롯한 ‘서구’주의, 누드사진 싣는 것을 언론사 최대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문화일보’의 ‘문화’이해가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문화의식 등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정아 사건이 그토록 쉽게 학력위조 사건에서 ‘성 로비 스캔들’로, 그야말로 ‘예정된 길’을 가게 된 것은, 그것이 일터에서 약진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가부장제의 두려움에서 지속적인 자양분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성공한 여성들, 전문직 여성들, 전문직이 아니어도 일을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잘 하는, 일을 삶의 의미와 연결시키고 일을 통해 시민으로서의 주체성을 실천하려는 여성들에 대해 분열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고령화 저출산, 신자유주의 체제하 계층의 문제 등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싶어 했던 저 무의식은 이제 신정아 사건을 만나 의식의 층위로 거침없이 뚫고 올라오고 있다.

모든 전문직 여성들을 ‘성 로비’의 잠재적 행위자로 간주하는 기사는 굳이 징후적 독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여성들에 대한 너무나 명백한 반격의 표출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신정아 중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이제 차분하게 ‘안정과 행복을 파괴하는 이 못된 판을 힘을 합해 바꾸려고 노력하는 대신 여성들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는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차피 의식의 층위로 올라온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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