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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북한 핸드북 발췌 3

관혼상제
80년대 이후 연애 결혼 증가
l승인1997.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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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 결혼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매결혼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80년대 들어서는 연애결혼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평양, 청진 등 대도시 공원과 강변 등에서는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면이 쉽게 목격된다. 선호되는 예비신랑의 직업은 외교관, 무역원, 운전사, 요리사 등으로 과거 사회안전부원이나 국가안전보위부원 등 권력지향에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결혼하려는 남녀는 각자의 해당 직장 당 책임자 또는 사로청 책임자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는 강제규정이라기보다는 신상이동에 대한 보고를 하는 것이다. 결혼절차는 양가부모의 상견례, 간단한 예물교환, 결혼식의 순으로 이어진다.결혼식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통상 공휴일에 이루어지며 신랑은 양복, 신부는 연분홍 한복을 입는다. 주례의 성혼선언과 신랑·신부의 결혼서약을 통해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한다. 축하객들은 축의금을 내거나 선물, 잔치음식 등 현물을 주는 것이 상례이다.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관계기관에 결혼등록을 함으로써 법적인 부부로서 인정을 받는다.
|contsmark1|□ 장례일반적으로 장례는 3일장을 한다. 장례절차는 지역에 따라 국영 장의사인 록화사업소나 편의협동조합, 협동농장 등에서 맡아 처리해준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지 않고 남자는 검은 완장을 차고, 여자는 흰 리본을 머리에 단다. 시체운구에 있어서는 상여를 사용하지 않고 트럭, 달구지 등을 이용한다. 장지는 지역내 공동묘지(도시지역)를 사용하거나 없을 경우 임의매장(대체로 농촌지역)을 한다. 매장형식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봉분을 쌓는다. 묘비는 경제적 여유에 따라 세우기도 한다. 묘지부족에 따라 화장을 권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매장방법을 택하고 있다.
|contsmark2|□ 제사1950년대부터 미신으로 간주하여 제사를 치루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1960년대 말부터는 직계존속의 사망시, 탈상때까지는 제사를 묵인해주고 있다. 1988년부터는 명절 때 차례를 지내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김일성 전 주석은 1974년 1월 전국농업대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사회주의적 제사’라는 변형된 제사방식을 제시하였다. 이는 제사방식을 검소하게 하기 위한 방안에서 제기된 것으로 제사상을 간단히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contsmark3|□ 회갑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물자절약이라는 차원에서 금지되었으나, 1960년대 말부터 부분적으로 부활되었다. 회갑절차는 축하객들이 술올림과 절을 하고 같이 어울려 술과 음식을 같이 한다. 최근 들어 김정일은 ‘인덕정치’ 차원에서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주고 있다.|contsmar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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