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친일파 재산 국가귀속결정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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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강점기에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들이 축재한 재산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다. 이번에 해당되는 재산은 이들 후손이 보유한 토지 총 25만 4906㎡(추정시가 63억원)이다. 예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러일전쟁 이후 1904년에서 1910년까지 한반도 주권을 일본에 내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당시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각종 현물대가도 받았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재산에 대해 마침내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반민특위 와해(1949.6.6) 이후 58년 만의 일이다.

제1조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정부로부터 작(爵)을 수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치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이상은 제헌의회에서 만들어져 반민특위의 법적 근거되었던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일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1949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민특위는 강제로 해산되고 친일파 척결은 무위로 돌아갔다. 반민특위가 법대로만 가동되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도(!) 반민족행위자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처단되고 재산이 몰수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민족정기가 바로 서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른바 ‘잘못 꿰어진 첫단추’ 이후 한국의 매무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곡된 한국 현대사는 교활한 기회주의를 가르쳤다. 역사에 대한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안겼다.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 도래한 냉전시대에 재빠른 변신으로 반공의 투사가 되었고 출세가도를 달렸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그들이 해방 후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고문과 인권유린의 전위가 된 것은 우리 역사의 크나큰 불행이다. 세간의 속설처럼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영락(零落)하고, 친일파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런 가치전도에 대해서 먼저 재야 학자 임종국이 고발에 나섰다. 그리고 일부 작가들이 나섰다. 이병주가 그랬고 조정래가 그랬다. 그러나 소설속의 미풍(微風)이었다. 언론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친일파의 온존을 기도했던 권력이 너무 강고했던 때문이었을까. 어떤 이는 이제는 너무 세월이 지났음을 말했고, 그래서 어떤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당사자들은 대부분 죽고 없음을 말했다. 혹자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자칫 연좌제가 될 수 있음을 말했다. 잘난 지식이 법리의 사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민족의 양심은 절망했고 영악한 처세술이 발호했다. 과거사 청산을 도모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답답해질 뿐이다.

프랑스는 2차대전 후 나치협력 반역자(collaborateur)에 대한 숙청에서 악질적인 나치협력자들을 사형과 무기강제노동형에 처했다. 4 년여의 나치 치하 기간 부역한 나치협력자 99만여 명이 체포됐다. 이중 6,763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나치협력 공직자 12만여 명이 시민권 박탈, 파면, 조기퇴직을 포함한 행정처분을 받아 관료사회에서 추방되었다(주섭일, 프랑스의 대숙청). 지금 프랑스의 지성들은 당시의 나치협력자 처단이 전쟁 직후의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다소 감정적으로 흘렀음을 반성하고 있다. 프랑스니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국공내전중의 중국도 친일파 숙청을 실시했다. 중국에서는 친일파를 한간(漢奸)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중국인으로서 적과 내통하는 자, 매국노’란 뜻이다. 중국에서의 한간재판은 국민당의 경우 처리건수만 4만 5천 건, 형이 확정된 수가 만 5천 건에 달했고 사형 집행도 3백5십 건이 넘었다. 공산당은 이미 1940년부터 ‘목전시정강령(目前施政綱領)’을 통해 한간들을 다스렸다. 이들의 한간 처리는 국민당에 비해 엄격했다(마스이 야스이치, 중국대만친일재판사). 흔히 한국의 경우 해방과 동시에 좌우대립을 하느라 친일 청산의 기회를 놓쳤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내전시기의 중국을 보면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친일 세력은 숙청은커녕 세습되어 기득권층으로 고착화됐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들의 선대가 친일행위를 통해 축적했던 재산을 대부분 확보했다. 혼란기에 일부 흩어진 것은 법적 소송을 통해서 되찾으려는 시도를 진행했다. 그들이 제기한 재산 관련 소송의 승소율은 40-50%나 되었다고 한다. 친일파 재산 환수에 관한 법적 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피디수첩>이 ‘매국노의 땅찾기’라는 제목으로 이를 고발한 것은 이미 1993년의 일이다. 이후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친일파 시리즈 3부작을 마무리한 것은 2004년이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이번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은 만시지탄이다. 귀속된 재산은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와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풍찬노숙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순국선열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소송청구 권리를 포기하고 향후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겠다"며 소송을 포기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제 세불리한 것을 알고 소송을 거두어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상규명과 재산조사 등 두 개의 칼날로 압박되는 친일반민족행위 청산작업이 얻어내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쯤되었다고 해서 상황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직무유기를 해온 언론이 행여 할 바를 다 했다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할 일이다. 근착 <피디저널>에서 친일문제 전문가 정운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우리 방송에 할 일이 더 많이 있음을 고언(苦言)하고 있다. 각사 다큐멘터리와 시사고발프로그램의 관심과 분발이 필요하다.

 

정길화 / MBC 대외협력팀장 , 12대 PD연합회장

1984년 MBC 입사. <인간시대> <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네껜> 등 연출. 임종국상, 통일언론상, 방송대상, 한국언론대상 등 수상. MBC 홍보심의국장과 특보겸창사기획단 사무국장 역임. 저서로는 <3인3색 중국기>,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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