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화의 조준선 정렬] 방송 80년, 지상파 방송을 위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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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방송 80년, 지난 10년의 궤적
 
올해는 방송 80년을 맞는 해다. 1927년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최초의 방송(라디오)을 했던 것에서 기산(起算)한 것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의 방송이라 정체성에 관한 시비가 없지 않지만 미디어사의 측면에서 1920년대에 방송을 시작했던 의미는 상당하다. 학계에서도 ‘근대방송 80년 한국방송 60년’과 같은 식으로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서울대 강명구 교수).
 
방송협회에서는 명분과 현실을 절충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한국방송 80년’ 대신 ‘방송 80년’이라고 하면서 9월 3일 방송의 날 전후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추진 중에 있다. 이 같은 기념행사는 1977년 방송 50주년 행사 이후, 매 10년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는 지난 1997년 이래 10년 만이다. 자축하고 기념하는 가운데 우리 방송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뜻있는 기회다.
 
이를 계기로 지난 10년 동안의 우리 방송계를 돌아본다. 1997년에서 2007년까지... 우리 사회는 개발 독재형 산업화와 권위주의 정권의 잔영을 애써 지우고 백화제방의 민주화로 줄달음쳐 왔다. 그동안 우리 방송은 무엇을 했는가. 10년 단위의 연표 속에서 방송의 궤적을 더듬어 보니 대략 4~5가지 정도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이번 방송 80년 기념행사는 이들 사안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언론기능의 활성화, 방송저널리즘 약진

먼저 의제설정과 환경감시 등 언론기능의 활성화다. 97년 대선 이후 착근된 후보자간 TV토론은 후진적인 대규모 대중동원 정치의 종언을 가져왔다. 텔레비전을 통한 후보자간 직접비교는 만성적인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을 가능하게 했다. 첨단 시스템이 도입된 개표방송은 부정시비와 철야감시로 점철됐던 선거풍속도를 바꿔 놓았다. 방송은 이 땅에 본격 텔레크라시(Telecracy)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이미지 정치의 극복이나 개표방송 시스템의 만전이라는 과제는 우리 방송의 몫이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 방송저널리즘이 현저히 약진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금기와 성역에 대한 도전은 계속됐다. 더불어 피디저널리즘, 라디오저널리즘이 만개했다. 방송은 의제설정과 고발 기능을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에 기여했다. 활자매체의 질시와 경계 속에 2류 저널리즘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던 방송은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매체비평을 정립하여 일부 신문의 오만과 오류를 질타했다. 두 차례에 걸쳐 국민이 선택한 대선 결과의 시대정신을 직시하면서 한국현대사의 진실규명에 나서 사실에 기초한 갈등해소와 진정한 화해를 도모했다.

방송 신뢰도가 신문을 추월, 격차 벌어져

언론저널리즘으로서 방송의 이러한 노력들은 수용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97년 대선 이후 매체 신뢰도 조사에서 방송이 신문을 추월한 것은 대표적인 증좌다. 한국언론재단에서 2년마다 실시하는 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1998년 방송(지상파 TV)의 신뢰도가 신문을 추월했다. 그 이후 2006년까지 5번의 조사에서 방송의 신뢰도가 신문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으며 양자 간 격차는 마치 경제학에서의 협상가격차(鋏狀價格差) 그래프처럼 나타나고 있다.(http://www.kpf.or.kr/datas/pdsindex/simimg/200612201043864.pdf 참조).
하필 1998년이 분수령이 된 것은 한 해전인 1997년 대선 국면에서 일부 신문들이 보인 특정 후보 대통령 만들기 식의 편파보도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본다.

사회통합과 한류 중심 기지

우리 방송이 사회통합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기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0년 전 1997년은 IMF체제의 내습(來襲)이라는 뼈아픈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그러했을 때 방송은 금모으기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의 자발적인 IMF 극복 정신을 견인했다. 이어서 실업대책 캠페인, 재해구호 모금방송 등 우리 사회에 엄혹한 시련이 닥칠 때마다 범국민적 통합의 계기를 조성했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개최의 환희는 기억에도 선연한데 이렇듯 월드컵, 올림픽 등 큰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 방송은 프로그램과 이벤트 등을 통해 국민적 긍부를 제고하였다. 그리고 6.15 정상회담이나 남북 이산가족 만남, 용천역 폭발사고 등의 국면에서 민족동질성 회복과 남북 화합에 기여하는 방송을 했던 것도 특기할 만하다. 
 
특히 지나간 10년은 한류 콘텐츠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제고하고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 데케이드(decade)로 각별히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겨울연가>, <대장금>, <주몽> 등의 한국 방송드라마는 세계 곳곳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한류(韓流)’라는 말이 중국의 사전에 표제어로 공식 등재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신화(新華) 신사어사전(新詞語辭典)’ 상하이 상무인서관, 2002년). 바야흐로 한국 방송은 한류의 생산기지이자 유통기지로서 곧 한류의 중심이 됐다. 중국을 강타했던 HOT 이후 이영애, 배용준, 최지우, 장동건, 비 등 한국의 유명연예인(celebrity)들은 우리 방송 프로그램을 온상(溫床)으로 하여 세계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아시아, 미주, 유럽, 러시아, 중동 등의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에 한국방송 콘텐츠와 방송망을 확장하고 있다.

기술의 힘, 새로운 미디어 주도

다음으로 방송기술의 힘이다. 지난 10년간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등장했다. 케이블, 위성방송, DMB 방송 등이 그것이다. 방송은 이런 가운데에도 재전송 등을 통하여 후발 매체에 콘텐츠를 제공해 이들의 연착륙을 도왔다. 또한 방송 내부에 축적된 테크놀로지가 없었다면 이들 매체의 출범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발 미디어의 개시를 도운 이런 행위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 채 방송은 매체산업의 다변화와 국제 경쟁력 제고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지난 10년 이래 방송은 디지털 방송 본격 실시, DMB 방송 실시 등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방송이 제기하고 창안한 DMB는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방통 융합국면에서 무료 보편적 방송서비스의 중요성을 다시금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참으로 놀랍다. 우리 방송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니... 올해 방송 80년을 기리는 유공자 포상이 있다면 이 같은 일에 기여한 현장의 방송인들이 주인공으로 섬겨져야 할 것이다. 이번 방송 80년 기념행사에서는 지난 10년의 시대정신을 관통하고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 현장에서 국민과 함께, 시․청취자와 함께 치열히 임했던 이들이 포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소망스러운 일이다. 때마침 방송협회는 올해 방송의 날 기념 표어를 “방송 80년, 국민과 함께 미래로”로 삼았다고 한다. 역사성과 미래지향성 그리고 수용자 주권과 시청자 복지에 대한 가치지향이 적절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의 분화, 지상파 방송 대표 시대 종언

그런데 위 글에서의 ‘방송’은 모두 ‘지상파 방송’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일의 주어(主語)인 ‘방송’에는 그 앞에 ‘지상파’를 따로 붙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상파 방송과 여타 뉴미디어를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 세상이 됐다. ‘그냥’ 방송이라 해도 되던 것을 지금은 ‘지상파 방송’으로 특정해야 할 정도로 지난 10년 사이 방송환경에는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이다. 이제 방송은 지상파, 케이블, 위성방송, DMB... 등을 일일이 구분해야 용어에 혼란이 오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이 방송의 정체성과 위상을 유일무이하게 대표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격변의 와중에 작금의 지상파 방송은 사양(斜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케이블을 필두로 한 뉴미디어는 방송의 시장과 영향력을 글자 그대로 잠식(蠶食)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사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지상파 방송 자신의 업보에서 온 측면도 크다. 그런데 둑이 터진 봇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포털의 등장은 미디어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뿐인가. DMB, UCC, IPTV, 와이브로... 등이 시시각각 출현하여 미디어빅뱅을 이루고 있다. 가히 미디어 시장은 백가쟁명의 시대다. 이전의 미디어는 모두 올드 미디어가 되어 퇴출을 위협받으며 생멸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상파 방송은 반세기 전 자신이 이전의 활자 미디어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이제 후발 뉴미디어로부터 ‘동태복수(同態復讐)’를 당할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 긴장과 위축감 속에서 애서 위안을 해본다. 그러기에 더욱 다가오는 방송의 날은 80년 기념일로서 마땅히 축하와 상찬의 날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 자신부터라도 자기 생일을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 바닥 강호의 도리가 어느 새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자존을 되새기는 것은 지상파 방송의 엄숙한 소명과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뜻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스스로 트럼펫을 불러도 들어주는 이 없다. 지상파에 대한 질시는 여전한 가운데 오히려 이러한 성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매체균형발전론 근거 있나...

도처에 지상파의 위기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즐기는 것도 같다.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핵심으로 삼는 지상파 방송과 산업논리, 상업 마인드에 기초한 유료케이블 방송을 정책과 제도에서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부터 그렇다. 지상파와 케이블 간 매체균형발전 논리는 방송 80년의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낱낱이 적시한 지상파 방송의 기여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근거도 정통성도 없는’ 해괴한 논리다. 80년 역사의 지상파 방송과 12년 여 남짓한 역사의 케이블 방송이 사회적 비중이나 수용자 복지와 무관하게 산술적 균형점인 50대 50까지 맞추어지는 것이 매체균형발전론자들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모습인가?

흔히 ‘지상파의 우월적 시대’니 또는 ‘독과점적 지위’니...하는 표현들을 하는데 이것도 문제다. 한국의 매체발달사를 들여다보면 뉴미디어의 등장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을 뿐 지상파 방송이 고의로 특정 후발 뉴미디어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늦춘 적이 없다. ‘방송.....’하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오로지 ‘지상파 방송’뿐이었던 시절의 결과를 놓고 마치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고 지배했을 때나 사용하는 ‘독과점’ 운운하는 표현은 정당하지 않다.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뉴미디어는 정치논리에 따른 난개발 결과

오히려 새로이 등장한 무수한 미디어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여건이 성숙하기 전에 정치논리에 의해 무리하게 도입된 ‘미디어 난개발’의 측면이 더 강하다. 미디어 관련 정책의 변천사를 보면 노태우 정권 이후 5년 주기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다는 학계의 지적은 매우 시사적이다(연세대 강상현 교수). 즉 1990년 노태우 정권의 민영상업방송 허가에 이어, 1995년 YS 정권의 종합유선방송 개시와 지역 민방 개국, 2000년 DJ 정권의 통합방송법 및 디지털방송 추진위 개시, 2005년 노무현 정권의 디지털케이블 본방송 개시 및 DMB 방송 실시.... 등이 그것이다.
 
5년 주기는 정확히 단임제 하의 현행 대통령 임기와 일치한다. 뉴미디어의 도입이 정치논리와 유관하다는 심증의 유력한 단초다. 정권이 임기 중에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해 기존 미디어를 길들이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토대를 확대하기 위한 기회를 포착하려는 의도의 개연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시청자의 요구나 수용자 복지에 대한 충분한 배려, 경제적 조건과 콘텐츠의 공급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졸속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디어 난개발’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후발미디어 지상파 볼모가 비대칭 규제로 나타나

대체로 보면 후발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영리를 도모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을 볼모로 삼아온 측면도 있다.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방송 등 후발 미디어들이 도입 당시의 명분과 조건에서 그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지 잠깐만 살펴보아도 충분히 알 일이다. 대자본 참여, 지상파 콘텐츠 재전송, 중간광고 허용, 24시간 방송, 방송심의 기준, SO의 보도기능 등을 필두로 해서 TV공시청 안테나 문제에 이르기까지 후발 미디어들은 지상파의 발목을 잡아 틈새를 공략하고 역차별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상파에 대한 비대칭적 규제다. 작금 지상파의 위기는 그러한 과정의 총체적인 결과다. 제작기반이 붕괴되고 생존의 위협 앞에 속절없이 노정되어 있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부당한 폄하와 때리기는 중단되어야 한다. 사실로도 옳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맞지 않다. 지상파 방송은 지난 80여개 성상 영욕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 국민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한때는 국민들의 분노와 질타의 대상이기도 했으나, 87년 6월 이후 지상파 방송은 지난 시절의 업보를 속량(續良)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치열하게 경주해 왔다. 그렇다고 전비(前非)를 망각하고 섣불리 지금에 자만할 것이 아님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언 10년 전부터 매체 신뢰도 면에서 신문을 추월한 것은 그 자그마한 결실에 불과하다. 국민의 성원과 함께 하기 위하여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지상파 방송은 국민과 함께 할 때 존재이유 성립

이번 방송 80년은 지난 세월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의 실천과제를 다짐하는 소중한 기회다. 분명한 사실은 방송의 주인인 국민과 함께 하지 못하면 지상파 방송은 존립의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무료 보편성과 공익성은 결코 포기할 수도 침해받을 수도 없는 지상파 방송의 ‘레종데트르’다. 지상파 방송이 아닌 어떤 미디어가 이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방송의 공익성은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에 충실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정체성에 대한 도전과 위협을 막아주는 호신부(護身附)다.
 
방송 80년을 맞아 지난 10년간 한국 방송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스스로 지상파 방송을 옹호하는 변명을 해본다. “자축은 하되 자뻑은 금물이고 자성은 하되 자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지금 비록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고 해서 근본을 잃을 수는 없다. 흔들림 없이 일이관지(一以貫之)해야 한다. 다음에는 그러면 지상파 방송이 공익성을 강화하고 제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할 차례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과 성원을 바란다. 
 

정길화 / MBC 대외협력팀장 , 12대 PD연합회장

1984년 MBC 입사. <인간시대> <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네껜> 등 연출. 임종국상, 통일언론상, 방송대상, 한국언론대상 등 수상. MBC 홍보심의국장과 특보겸창사기획단 사무국장 역임. 저서로는 <3인3색 중국기>,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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