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선 앞둔 美 미디어업계 형평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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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 연방 방송위원회(FCC) 위원장이 선거 보도에서 후보자를 공정하게 출연시키는 ‘Fairness doctrine’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제도는 이미 70년대의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후 논란을 되짚어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 대선이 전에 없이 일찍 과열되면서 방송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보수 라디오 토크쇼 때문에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은 벌써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이들 라디오 방송들이 너무 보수화돼 자신들에게만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약 20년 전에 폐지된 Fairness Doctrine을 다시 세우자는 것. 민주당 하원의원이 안건 상정을 시도하다 실패하기도 하고, 공화당에서는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선 이면엔 미국 방송 문화의 고질병이 된 정치 토크 프로그램과 그 인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맹종이 있다.

Fairness doctrine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연방 방송위원회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의 토론은 균형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시작됐다. 10분간 한 주제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이 방송에 나갔다면, 같은 시간을 반대의견에게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의 기반은 당시 방송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 얼마 되지 않는 방송 공간이 소수의 방송사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막는다는 전파 희소성에 기반하고 있었다.이 규제는 70년대 이후 쭉 공격을 받다 87년에 완전히 폐지됐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케이블 TV나 군소 라디오 방송 등 뉴미디어의 등장이다. 바뀐 뉴미디어 환경에선 한 방송에서 찬성을 해도 다른 반대하는 방송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방송국에 공정성을 강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 대법원은 이런 규제가 방송국으로 하여금 논란이 있는 주제를 피하게 해 미 수정헌법 정신을 침해한다는 의견까지 냈다. 결국 Fairness doctrine은 87년 미국 연방 방송위원회에 의해 폐지된다.
그렇다면 Fairness doctrine이 왜 21세기에 다시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방송의 보수화에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보수 라디오 토크쇼들이다. 이 쇼들이 인기를 끌면서 라디오 방송을 보수적으로 바꿔 놓았다. 게다가 케이블에서도 CNN을 누르고 Fox가 뉴스 채널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보수화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민주당 쪽에서 대책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 방법이 물론 미디어 다양화 시대에 다른 방송사를 세우는 것으로 되면 좋겠지만, 미국의 상업방송 체제에서는 광고주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리버럴 라디오라는 것이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3월 31일자 기사 참조). 그리고 돈 많은 방송사 사주들이 기본적으로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직접적인 정치이해에만 있진 않다는 것을 공화당 쪽의 유력인사들도 이런 규제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심지어 한때 공화당 원내총무였던 사람이 ‘미국 상원의원들은 라디오 토크쇼를 쫓아다니는 쥐떼와 같다’고 한탄하기까지 했던 이유는 방송의 규제 완화로 생긴 보수 라디오 토크쇼들이 미국의 정치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토론을 위해 자기의 정치관을 피력하기 보다는 인기를 위해 더 심한 말을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쪽으로 미국의 정치 사회문화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이런 미디어 환경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 중의 하나는 정치인들. 변화한 유권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선 자신들도 토크쇼 입맛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인데, 물론 이걸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잘 이용하는 인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미국의 정치를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렇게 바뀐 미디어 환경을 고치기 위해서는 Fairness Doctrine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이 규제를 되세우자는 논의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소수에 그치기 때문에 그 실행가능성은 의문이지만, 이런 규제에 대한 반성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연방 방송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뉴미디어 환경에서의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시각이 미국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지, 지금도 한국의 미디어들에게 무조건적인 규제 철폐를 도입하자는 일부 시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송은 뭐라 해도 그 기반 자체에 공공성을 내재하고 있고, 현대 사회의 정치, 문화, 사회 활동과는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no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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