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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미인대회인가?
김정란 (시인, 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1999.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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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 오월은 아름다운 계절, 이때가 되면 누구나 삶의 아름다움에 가슴을 설레게 된다. 햇빛은 찬란하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숨겨두었던 노래들이 옹알거리며 솟아오른다. 오월에는 아무리 염세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간은 삶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 이 즈음에 ‘미의 제전’이라 불리는 미인대회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올해에도 아름다운 여자들이 수영복 바람으로 심사위원들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의 여왕’으로 등극하기 위한 콘테스트를 치렀다. 그리고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누군가 당선되었겠지. 그리고 cf며 tv 출연 등의 제안을 받고 꿈에 부풀어 있겠지. 여성적 주체성에 대한 별 의식이 없었던 젊은 시절에는 나도 미스코리아 대회며 미스월드 대회, 그리고 미스유니버스 대회까지 즐겨 보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내 안에서 여성적 자각이 생겨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출전하는 미인들의 면면에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맨 그 얼굴에 그 얼굴, 똑같은 헤어스타일과 유치한 말투. 마네킹처럼 억지로 웃는 인공적인 웃음. 게다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둘러싸고 생겨나는 아름답지 않은 온갖 잡음들도 이 대회에 대해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미인대회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의 존재 이유를 아무리 그럴 듯하게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이 상업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수렴된다. 미인들은 팔리기 때문에 전시되는 것이다. 미인대회에 참전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자신의 육체를 시장에 상품으로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포장은 다르지만, 미인대회라는 발상은 청량리 뒷골목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 젊은 여성들의 육체 전시 방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 ‘대회’라는 좀더 고급스럽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수행된다는 것뿐, 육체를 상품화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의 시선 앞에 스스로를 노예로 전시하는 행위이다. 말하자면, 존재가 인간에게 허용한 인간적 구축의 여건을 전혀 무시한, 따라서 인간적 가치가 발생하기 이전 상태의 존재, 존재의 원시적 물적 여건을 존재 유지와 강화의 수단으로 내다 파는 행위인 것이다. 고대 사회의 노예가 노동력을 판다면, 현대의 여성 노예들은 남성들의 파시스트적 시선을 만족시켜주고 그 대가로 생의 안전을 유지해 줄 돈을 받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게까지 래디컬한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미인대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백 보 양보해서 이 대회가 한 시대의 미의 모델을 제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미의 모델의 형성이 점점더 자본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출전 미인들 대부분이 성형 수술을 하며, 미용실 등을 통해서 자본 집약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아름다움 자체가 조작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아름다움의 조작은 극단적으로 정교한 정보에 의해 가능해진다. 게다가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아름다움은 이제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것조차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조작된 자연스러움’이다. 모든 것은 자본과 정보의 회로 속을 거치면서 인공적으로 조작된다. 이런 형편이므로 이제는 가난한 집 딸이 미스코리아가 될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유지 자체가 자본과 정보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미스코리아대회를 통해 제시되는 미인의 모델은 한결같이 서구 모델에 맞추어져 있다. 세계대회를 겨냥한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자연적인 육체적 요건들은 열등한 것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이런 식의 서구 모델을 ‘베끼는’ 미의 기준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서구의 미인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깎고 붙이지 않아도 그렇게 생겨 있다. 그녀들을 흉내내느라고 한국여성들은 깎고 붙이고 굶고 눈을 꿰매고 법석을 떤다. 그리곤 영원히 불완전한 카피인 자신의 육체를 저주한다. 미인대회는 철저하게 남성들을 위한 것이다. 남성들이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 대회들은 결과적으로 여성을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대상적 존재로 격하시킨다. 여성 은 아무리 스스로의 지적 능력에 의해서 자신을 구축해 본들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과 경쟁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시달린다. 육체적으로 남성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여성은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쓰든 ‘이뻐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세계적으로도 미인대회는 점차로 사라지는 추세이다. 벌써 이 대회에서는 야만적인 냄새가 난다. 우리 후손들은 “옛날에 미스코리아 대회라는 야만적인 행사가 있었대, 웃기지 않니?”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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