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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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도 PD다!
김한중(EBS 교양제작국)
  • 승인 1999.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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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pd연합회보에 ad칼럼이 처음 실렸을 때 난 잠시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오자는 아닐까, 만약 오자가 아니라면 이건 분명 ad의 인권이 인정받기 시작한 일대사건이 아닐까….’ 내심 반가우면서도, ‘ad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선배들의 말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나를 발견하는 것 같아 순간 두려웠다. 만약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얘기를 늘어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정말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그러던 어느 날 나는 ‘ad칼럼’을 청탁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번 주 토요일까지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한번 써보죠.’ 적당한 거드름으로 짐짓 표정관리를 하며 나는 생각했다. ‘기회는 이렇게 쉽게도 오는구나.’하지만 ‘ad가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려 해도 1분이 멀다하고 빗발치는 전화벨 소리. 패널이 토론프로그램의 생명인 만큼 패널섭외는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린 일대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한 명의 패널을 섭외하기 위해 수백 통의 전화통화가 이뤄진다.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사는 작가들을 보면 놀라움 반 안타까움 반이다.아무튼 사무실에서 글을 쓴다는 호사스러움은 깨끗이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면 집에서? ad생활 2년 동안 집은 곧 잠자는 곳일 뿐이었다. 새벽퇴근과 새벽출근이 어느새 익숙해지면서 집이란 곳은 편집실에 침대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가야만 하는 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생방송으로 옮겨오면서 평일 퇴근시간은 많이 빨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집에만 들어서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조건반사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결정적인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글쓰기 위한 완벽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점은 나도 모르게 달라진 나의 글쓰기 습관이었다. 나의 문체는 너무나 메마르고 딱딱해져 버렸음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끝도 없는 서류작업과 번거로운 행정절차가 생활이 되면서 나의 글도 공문서처럼 건조하게 변해 있었다. 무심코 펼쳐본 나의 취재수첩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빼곡이 적힌 건 출연자들의 인적사항과 계좌번호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그 수첩을 본다면 pd라는 사람은 보험설계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짐작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ad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레지던트도 의사인 것처럼 ad도 곧 pd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게 또한 현실이다. pd가 pd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엄청난 잡일을 온몸으로 감당해내는 게 ad의 현실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pd라는 건 뭔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문법으로 영상화하는 사람이 아닌가. pd가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사고하기를 멈춘다는 것이다. 작가가 물어온 먹이감을 받아먹기만 하다가는 사냥법을 잊어버린 맹수처럼 초라해질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직 ad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선배의 말처럼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사고쳐도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게 ad이기 때문이다. 오늘 난 내 취재수첩의 한켠에 어떤 출연자도 범접할 수 없는 상상력의 성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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