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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러니까 20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나는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투표권이 없었던 열일곱이었지만 관심만큼은 컸던 나는, 당선자가 내건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 창궐했던 지난날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작용에 시달리곤 했기 때문이다.

1992년, 입대를 앞둔 대학 2학년 겨울, 최초의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32년 군정의 종식을 고하고 비로소 ‘민간인’이 대통령이 된 일대 사건이었지만 그 말 또한 그리 달갑지 않았다. 세기말로 접어드는 시점에 이제야 민간인 정부라니… 누가 알게 되면 무척 민망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1997년, 입사 초년병 시절, 대권 3수만에 ‘준비된 대통령’이 ‘국민의 정부’를 주창하며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국민의 정부’라는 표현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준비된 대통령’은 내겐 흥미로웠다. 대권도전이 마치 숙명과도 같았던 당선자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준비된 ○○○’ 시리즈가 유행어처럼 퍼지고 나는 심지어 ‘준비된 PD’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2002년 21세기 최초의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했다. 네티즌들의 참여로 막판 뒤집기라는 대선 드라마를 연출해서일까 ‘참여정부’는 탄생의 비결을 국정의 원리로까지 승화시키려 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꼬박 20년이 흘렀다. 20년 전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속의 사회현상에 불과했던 대선은 이제 내 의식과 행동을 규정지을 만큼 훌쩍 자라났다.

그런데 국민이 뽑는 다섯 번째 대통령의 탄생을 앞두고 있는 지금 왜 난 공허하기만 한 걸까. 누군가는 그것이 불혹의 나이가 돼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요 며칠 계속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갈증은 힐러리와 오바마가 예고하고 있는 미국의 대선 드라마에서 비롯된 증상인 것 같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대선드라마에 대한 관심도를 저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그리고 그 둘 모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정치적 약자들에게 극적인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이제 대선까지 한 달 여. 5년 만에 다시 시작된 대선 드라마는 과연 어떤 흥행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대통령직선 20주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자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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