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의구현사제단의 ‘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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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삼성 이건희 왕조’의 장막 뒤편 검은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기자회견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축구로 말한다면 훌륭하고 결정적인 어시스트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공을 받아 골을 넣으려 하지 않는다.

검찰이 뭘 밝혀내기는 애초부터 기대난망이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까지 뇌물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듯이 수도 없이 삼성 앞에 굴복해왔던 검찰은 끊임없이 공을 사제단과 김 변호사에 되돌려주고 있다.
삼성의 금융실명제 위반을 비롯한 불법적 금융거래의 이면에는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공모가 필연이기에, 금감원은 관련 금융기관에 대해 즉각적인 검사에 들어가야 하고 재경부장관은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관련하여 관련금융기관에 대해 즉각적인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또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에 준 돈의 열 배 이상을 재경부와 국세청에 줬다’는 김 변호사의 증언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국회는 어떤가. 삼성비자금 차명계좌를 규명하기 위한 금융정보분석원 문서검증 안건을 국회 재경위에 올리느라 동료의원들 서명을 받다가 어떤 의원한테서는 “삼성한테 받은 돈이 너무 많아 서명하기 어렵다”는 솔직한 답변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타인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 2004년 11월 발의된 지 3년이 지나도록 재경위에서 잠자고 있다.

삼성 광고비에 수익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언론도 몇몇 예외를 빼면 크게 다르지 않다. ‘군화발’ 대신 ‘돈다발’에 굴종한 것일까. 특종에 죽고 사는 언론이 오죽하면 삼성특종은 서로 떠넘긴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나.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은 김 변호사와 사제단의 발표에서 일부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삼성 이건희 왕조가 우리 사회를 떡 주무르듯 좌지우지 하는 실질적인 권력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7년 국민항쟁으로 군사독재를 종식시켰지만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재벌 그 중에서도 삼성에게 돌아갔음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겠는가.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개혁세력을 표방한 여권의 실패도 실제로는 권력의 실질적 지배자인 삼성 이건희 왕조에 맞서기는커녕 철저히 결탁한 데서 비롯됐다. 참여정부가 삼성에게 장관급 각료를 추천해달라고 했다는 김 변호사 증언도 나왔지만, 돈도 사람도 머리도 삼성에 의존했으니 그 만큼 서민을 등지게 된 것이다.

개혁세력을 뛰어넘으려 하는 진보세력의 위기도 선언적으로 경제권력 삼성에 맞섰을 뿐, 서민과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책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군사독재의 횡포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사제단이 세상에 알린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은 군사독재 종식을 위한 국민항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꼭 20년 만에 사제단은 삼성 이건희 왕조의 온갖 비행을 세상에 알리며 경제민주화운동을 선언했다. 이제 사제단의 멋진 ‘어시스트’를 받아 이건희 왕조 종식의 멋진 ‘골’을 넣을 진정한 선수가 나올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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