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골치 아픈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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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슭 / SBS 편성기획팀 PD

왜 일까? 도대체 왜 많은 PD들은 여전히 골치 아픈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걸까? 월급이 더 나올까? 승진 점수가 올라가나? 시청률이 팍팍 나오나?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누구한테 상이라도 돌아가 그러나? 혹 소영웅주의나 우월의식? 누가 강압적으로 윽박지르나? 경제학자든 경영학자든 심리학자든 간에 금전적 인센티브나 생존경쟁이나 심리적 보상, 뭐 어떤 것으로 설명 할 수 있을까? 정작 자문과 인터뷰를 위해 많은 전문가들을 찾아 다녔지만 ‘제가 왜 이러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던질 생각은 못 해보았다.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거라 말들은 하지만 어떨 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녹슨 머리로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참 그것이 알고 싶다.

<세븐데이즈>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합쳐 근 3년 가까이 시사프로그램을 하다가 얼마 전 팀을 옮기며 책상 정리를 하는데 잔뜩 쌓인 자료 틈에서 재밌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A4에 출력된, 2005년 12월에 작성된, <브레이크 없는 PD저널리즘>이라는 제목을 단 조선일보 기사 3개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맞다. 그러려고 출력해 갖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웃으려고… 일 하다 우울하고 꿀꿀할 때 한 번씩 꺼내보며 피식 웃으려. 한 번씩 막혀 답답할 땐 작가들에게 이런 농담도 했었다.  

“386 운동권 시각으로 결론부터 빨리 정해서 그냥 짜 맞추자. 일등신문이란 데서 그렇게 하면 된대.” “취재 경험이 별로 없는 작가가 써 준대로 PD는 그림만 붙이면 된다니까 나 자고 올래, 써 줘.” 뭐 이렇게 썰렁하게. 그나마 최근엔 별로 꺼내 본 적 없으니 그다지 심하게 골치 아파 꿀꿀한 적은 없었나 보다. 역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반사!’ 그리고 이젠 ‘아듀!’

제작하는 PD가 골치 안 아픈 프로그램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권력이든 광고든 협박이든 소송이든 농성이든 어쨌든 골치 아프게 하는 적(?)들이 많은 프로그램이 줄지는 않고, 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새로이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권력보다 이제는 광고주님들과 직접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더 많아졌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 같다. 다들 ‘레드썬’ 순식간에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말이다.  

한 번은 나도 편집실에서 주요 10대 광고주님들 홍보팀으로부터 ‘줄줄이비엔나’처럼 릴레이로 전화를 받은 적 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골치 아프지 않고 쉽게 가자면 그냥 피해가면 된다. 잡범들, 순경들, 구멍가게, 찌질이 사이비교주, 약장사, 불륜커플, 말단 공무원 등 뭐 찍소리 적게 할 적(?)들만 골라 치면 된다. 

 광고주이면서 나중에 협찬 주거나 연수 보내줄 지도 모르니 알아서 잘 모셔도 된다. 정의보다 배신을 더 부풀리고, 진실보다 국익을 알리고, 함께 좋은 소식 널리널리 알려가면서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살아도 된다. 혹시나 배달 올 폼 나는 와인이나 고급호텔 숙박권을 누려도 재밌지 않을까? 재미없을까? 적어도 골치는 안 아프지 않을까? 왜 그리 골치 아프게 일해야 할까?

바보다. 애써 골치 아프려 하다니, 바보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바보가 산을 옮긴다고. 맞다, 실은 그 재미일 지도 모른다. 산을 옮기는 재미. 어떤 사람들은 당체 이해를 못 할 그 재미… 그런데 그 재미를 어떻게 남들이 알아먹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골치는 아픈 데 재미는 있다는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냥 설명하지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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