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언론인 방북기]변화하는 남북관계, 언론교류 새 물꼬를 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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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부터 28일 까지 4박 5일간 남측의 언론인들이 북한을 다녀왔다.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의 초청으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기자협회, PD 연합회, 인터넷 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언론재단 등 5개 단체가 소속된 연합단체) 소속 언론인 21명이 중국 심양을 거쳐 북한을 방문, 남북 언론인 토론회를 가진 후 돌아왔다. 한 참가자의 방북기를 싣는다.<편집자주>

2007년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 언론매체들과 정당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에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보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였던 것 같다. 지난 번 정상회담에 이후 총리급, 국방장관급 회동에 이어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이 방한하는 등 여러 뉴스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하다. 남북문제는 이번 대선에 거의 변수가 안 되는 모양이다. 물론 BBK와 삼성 관련 뉴스가 워낙 큰 관심사이기 때문일까? 

평양의 첫인상

일부 사람들에게는 평양에 다녀오는 것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평양방문이 내게는 처음이었다. 화면을 통해 보아 오던 평양 순안 공항의 이미지는 예전에 가 보았던 아프가니스탄의 황폐하고 썰렁한 공항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려 직접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청사가 작지만 단아해 보였다. 보통 공항은 촬영하는 게 쉽지 않다. 6미리 비디오카메라를 가져갔지만 얼마나 촬영할 지는 미지수였었다. 하지만 북측 안내원은 촬영을 허가했다. 의외였다. 순간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을 출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고 김일성 주석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는 평양의 만수대 언덕.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먼저 이곳을 들르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이 주변 계단을 쓸고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첫 방문지로서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며칠 간 더 보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하고 숙소인 양각도 호텔로 향했다.

저력, 그리고 유구한 민족사

다음 날 만경대 생가, 주체사상탑을 둘러보면서 그 중에 시내 곳곳을 관찰했다. 곳곳에 생경한 구호와 함께 고 김일성 주석의 사진과 그림 붙어 있는 모습과 차창으로 보이는 걷거나 전차를 탄 평양 시민들의 모습은 예전에 화면으로 보던 그대로였다.  

주체사상탑 쪽에서 대동강 건너로 보이는 평양 시가지가 화면으로 많이 보던 평양의 대표적 인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옥의 건물을 몇 채 섞어서 여러 층을 쌓아 올린 모양의 인민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 평양대극장, 옥류관 등의 인상적인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시내에 고층 아파트들이 꽤 많았으나 대체로 페인트칠이 오래돼 칙칙한 느낌이 들었는데, 중간 중간에 위치한 이런 공공건물들은 한결 같이 매우 웅장하고 번듯해 보여 대조를 이루었다. 오후에는 재북열사릉에 잠시 들렀다가 묘향산으로 향했다.

버스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묘향산. 늦가을의 묘향산 산세가 매우 아름다웠다. 다음날 아침 국보급 유적들이 즐비한 보현사를 참관한 후 국제친선전람관에 들렀다. 겉모습이 평양의 인민대학습당과 비슷해 보였는데, 묘향산의 산세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내부도 웅장하고 화려했다. 바닥과 기둥, 계단이 모두 대리석이고 복도 길이가 380미터라고 했다.  

알고 보니 산속으로 굴을 파 들어가서 만든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세계 각국의 문화 예술가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공예품, 미술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에는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각국에서 보내 온 선물 21만 8,400여점이 200여개의 방에 진열돼 있다고 한다. 1시간 반 동안 둘러 봤지만 1/5도 채 못 봤다.

남측에서 온 사람들은 이 전람관을 보며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인민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생활을 하는데 왜 이렇게 화려한 건물을 짓고 유지하는데 많은 돈을 쓸까 하는 비판적 시각과 함께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박물관으로써 앞으로 북한이 개방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큰 관광 수입을 올려 주게 될 것 같다는 시각이다.  

평양의 웅장한 건축물들과 이 전람관을 보면서 북한의 저력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후자 쪽 시각을 가질 것 같다. 이 건축물들은 대부분 1980년대 중반까지 모두 지어졌다고 한다. 90년 전후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북한 경제도 치명타를 입었다. 하지만 이러한 저력이라면 앞으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관계가 본격적인 화해와 평화의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큰 역량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동명왕릉, 대동강변의 대동문과 련광정 등을 둘러보고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보면서는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방북에서 북측의 방송사와 신문사들을 방문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지만 남북 언론인 토론회가 열린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진일보한 ‘남북 언론인 토론회’ 

방북 4일차에 남북언론인 토론회가 고려 호텔에서 있었다. 의제는 ‘역사적 2007 남북정상선언 지지운동을 위한 남북언론인들의 당면 활동 방향에 대하여’라고 정했다. 남북 양측에서 각각 4명씩 주제발표를 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의 중요성에 대한 북측 언론인들의 인식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의 모든 발언은 2000년 6. 15선언과 2007 남북정상선언에 근거하고 있었다.  

양측이 모두 발제를 마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6. 15선언과 2007 남북정상선언에 반하는 왜곡 보도에 대해 공동 대응하자는 것과 6월 15일을 남북 공동의 기념일로 제정되도록 남북 언론인들이 함께 노력하자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일부에서는 이 정도의 합의에 대해 별 성과 없는 토론회였다고 비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나는 작년 11월에 금강산에서 열렸던 첫 남북언론인 토론회에 참석했었기 때문에 이번 토론회와 비교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사전 조율과정에서 발제문의 토씨 하나까지 문제 삼아서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당일 토론회에서는 조율된 발제문을 그대로 읽어내려 가는 형식이었다. 토론회에서 자유 발언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전에 완전한 발제문을 요청하지 않았다. 간단한 메모만 한두 시간 전에 전달했을 뿐이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발제 방식도 메모를 보며 아니면 그냥 자유롭게 발언하는 형식이었고 예정에 없던 여타 참석자들의 자유 발언도 가능했다. 작년에 비하면 내용과 형식 모두 진일보한 토론회였다.
이런 변화는 일정 정도 신뢰 관계가 쌓이면서 온 변화라고 생각된다. 작년 금강산 토론회 이후 남측 언론본부가 보여준 인내심 있고 성의 있는 태도에 어느 정도 화답하는 것 같았다. 특히 남측 언론본부 상임대표이자 이번 방북단 단장인 정일용 기자협회장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북측 언론분과의 최칠남 위원장은 와병 중인 가운데서도 직접 토론회에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지고 간 6미리 비디오카메라로 4박 5일간의 일정을 담는데도 거의 제약이 없었다.  

북한은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북한에서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싶었지만 별로 못 본 것이 좀 아쉽다. 그런데 본 것 중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좌담 프로가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이 나와 대담하면서 우리 대선 후보 중의 한 사람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그가 당선되면 남북 관계가 과거로 회귀할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섬뜩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북한 변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북한과 남북관계는 여전히 대선에서 중요한 변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과거에 부정적으로 악용되는 변수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의 변수로서 말이다.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반도에 평화도 경제적 번영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당연히 대선 후보자들 간에 북한에 대한 인식과 평화 통일 정책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비껴가서는 안 된다. 이번 방북을 통해서 더욱 굳어진 생각이다. 

양승동 / 한국PD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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