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현장 비평이다-방송비평위원회 보고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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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용서의 의미MBC <우리, 용서합시다>를 생각하며

IMF의 영향은 방송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소비적이고 오락적인 프로그램을 지양하고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계몽주의, 온정주의를 구현하는 캠페인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 것이다.이번 봄 개편에서 MBC는 <칭찬합시다>의 사회적 반향에 힘입어 속편 성격의 <우리, 용서합시다>를 신설했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용서 문화’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물론 서로의 마음을 열고 돈독한 이해를 바탕으로 용서를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훈훈한 감동이 함께 하는 화해의 장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을 대하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서를 위한 용서’가 강요되는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누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용서하는 장면을 화면에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한 억지구성을 하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근본적인 문제는 화해와 용서의 주인공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 구체적인 예로, 가출한 엄마 대신 장애인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사는 결손가정의 소녀를 불러내 극적 상황의 유도를 위해 상처를 자극하는 질문을 계속적으로 진행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는 어린 소녀에게 가출한 엄마와의 전화연결 장면을 보여준 것은 물론, ‘엄마에겐 다른 인생이 있으니 용기를 갖고 살아야 한다’며 가혹한 결론까지 내려주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또 장애를 가진 남편과 함께 출연한 비장애인 부인이 자신의 부모에게 용서를 구했던 내용에 있어서도 일단의 문제가 지적된다. 이러한 경우에 시청자들의 진정한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끝내 허락을 받지 못하고 둘이서 결혼을 해 버렸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내용으로 전개됐어야 한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는 초점이 장애인과 결혼했다는 것에 맞춰지고 있어 진정한 이해와 용서를 바라던 시청자들의 기대에 어긋하고 말았다. 이러한 실수는 ‘칭찬’과 ‘용서’가 그 근본에서부터 매커니즘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데서 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칭찬’의 경우 누구에게든 쌍방간에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용서’는 진심이라는 바탕이 깔려있지 않는 한 진정한 용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제작진으로서는 드라마틱한 화면구성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억지 용서장면을 보는 시청자에게 공감의 표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정한 용서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용서의 결과물에 너무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용서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추적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이 있은 후에야 용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훈훈한 화해의 장은 비소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보이기 위한 화해와 용서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소박한 프로그램을 향해 눈을 돌린다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해도 넘치거나 마르지 않는 용서의 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방송비평위원회 공동집필>● 지금까지 글 실린 순서1. KBS <추적 60분 - 부정부패 시리즈 3부작>2. 시사 풍자 프로그램3.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어린이 참여 문제4. 방송협회의 ‘프로그램 공익성 강화’ 선언문5. MBC 21세기 특집 다큐멘터리 <통일>6. KBS <문화체험, 오늘의 현장>7. 각 사 옴부즈맨 프로그램8. 방송개혁위원회 관련 신문 보도9. MBC <청춘> 표절 사태10. 새 일일연속극 KBS <사람의 집> MBC <하나뿐인 당신>11. 오락 프그램의 특정 연예인 의존문제12.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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