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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인’에 대한 몇가지 의문들박종성(KBS 라디오2국)

|contsmark0|최근 정부에서는 ‘용가리’ 제작자 심형래 씨를 모델로 ‘신지식인’에 대한 공익광고를 시작했다.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신지식인은 지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을 말한다. 과연 ‘돈버는 지식인’만이 새로운 지식인인가? kbs 라디오국의 박종성 pd가 정부가 유포하는 ‘신지식인’에 대한 비판의 글을 보내와 이를 싣는다. <편집자>
|contsmark1|“신지식인은 지식을 활용,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이나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일하는 방식을 개선·혁신한 사람이다.” - 99년 2월4일 청와대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김태동 정책기획수석
|contsmark2|‘신지식인’의 출생신고서는 이렇게 작성되었다. 그것에 따르면 신지식인은 당장 현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전문 지식의 보유자이며 생산성과 효율성의 전도자이다. 그는 시장의 법칙이 유일신앙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빛 찬란한 아이콘이다. 이 물신적 선언 앞에서 ‘지식인은 세계의 모순에 실존적으로 관여하는 자’라는 사르트르의 정의는 순식간에 폐기해야 할 구시대적 발언이 돼버린다. 당연히 더 이상 관여해야 할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contsmark3|아직까지 (구)지식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자의 불안감에서 하나의 의문을 제기한다. 진정 (세계의 또는 대한민국의) 제 모순은 해소되었는가. 그것을 직시하고 고발할 비판적 이성과 윤리가 불필요한 세상이 되었는가. 우리 사회가 전문 분야의 지식만으로 무장된 ‘용가리’표 신지식인들로 충분할 만큼 안전하게 설계된 쥬라기공원이 되었다고 보는가.
|contsmark4|“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입니다.”화제의 영화 ‘용가리’의 제작자이며 대한민국 신지식인 1호인 심형래씨가 공익광고에서 엄숙하게 설파하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해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본인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가정이니까 양해하시라), 심씨가 신지식인적 발상으로 엄청난 빚과 특수효과를 동원해 만든 ‘용가리 2’의 흥행이 실패하고 회사는 파산하고 본인은 물론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고통을 겪게된다 하자.여기서 또다른 질문을 던진다.어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항상 미덕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신지식인적 시도가 실패했을 경우에도 그는 여전히 신지식인인가.
|contsmark5|김 전 수석의 말대로라면 신지식인은 어떤 일을 성취한 자가 성취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만 부여되는 임시작위이다. 신지식인은 냉혹한 성공의 신화다. 그것은 실패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며 그 결과가 가져올 수도 있는 인간적, 공동체적 부담과 희생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다. 또한 ‘행위’는 그것을 위한 ‘욕망의 발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욕망에는 분별력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행위는 부도덕해지기 쉽다. 공동선의 이념과 보편적 덕목을 방기한 환금성위주의 (신)지식축적은 ‘윤리부재’라는 치명적 독소를 이미 배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신지식인론은 절대적 빈곤의 타파, ‘잘살아보세’라는 다소 촌스럽지만 그래도 보편적 명제를 제시했던 박정희의 새마을운동보다도 윤리적으로 오히려 열등한 게 아닌가.
|contsmark6|‘행위’라는 관점에서 추가적인 질문이 가능하다. 지금껏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는 ‘행위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과잉’에서 비롯된 것인가. 다시 말해 만연한 악덕과 부패는 ‘행해진 것’인가 ‘행해지지 않은 것’인가. ‘can-do’(할 수 있다)의 정신이 도덕성의 끈을 놓칠 때 악이 행해지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국민의 정부에 이전의 정권들과 구별되는 진정한 도덕과 철학이 있다면, 개발독재시대 이래의 금과옥조인 ‘하면 된다’를 신지식인이란 내용 없는 수사 속에서 동어반복할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될 것’ ‘안할수록 좋은 것’이 있다는 것도 말해봄직 하지 않은가.
|contsmark7|마지막 물음은 근본적인 것으로, 왜 굳이 (신)지식인인가 하는 것이다. ‘전문가’ 혹은 ‘전문 기능인’에 그쳐도 좋을 호칭을 온갖 억측과 물의를 무릅써가며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신’과 ‘지식인’의 조합이 부담을 준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이 땅에서 도저한 자유의지와 비판적 이성을 근간으로 하는 ‘지식인상’이 완성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모든 주장은 수사학을 통해서 충족되지 않는다. 입증되어야 한다. 정부의 주장은 더더욱 그렇다. 신지식인을 소개하기에 앞서 완성된 ‘지식인’의 모습을 제시해야 할 것이고 돈과 이익의 추구가 결코 죄악과 결부될 일이 없을 만큼 청결하고 투명한 세상이라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할게 아닌가.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신지식인’이 절대 포기될 수 없는 매력적인 개념이라면 여기 말하려고 하는 한 사람의 삶만큼 ‘아름답게’ 들어맞는 게 있을까.“그는 밑바닥 노동자였다. 그러나 그는 (노동법)지식을 활용, (노동자로서 그의 삶에 당연히) 부가(되어야하는 ‘권리’와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창출하려고 하였으며 (노동자는 법정 노동시간이나 받는 대우에 상관없이 시키는대로 일해야 한다는)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과 동료의 노동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발상으로 (노동자들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 혁신하고자한 국내 최초의 인간이었다.”신지식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 1호는 심형래가 아니라 전태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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