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안드로메다와의 교신
상태바
[PD의 눈] 안드로메다와의 교신
  • 최근영 KBS PD
  • 승인 2007.12.12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영 ‘KBS 스페셜’ PD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왜 없겠는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으므로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한 적의를 느낀다. 나를 싫어하는구나! 나에게 무언가 화나 있거나 어떤 오해를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정말 나쁜 놈인데 자기만 그 사실을 모르는 못 말리게 자기중심적인 환자일수도 있다. 어쨌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같은 직장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주 마주쳐야 한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일찍이 안드로메다와 교신한다던 어느 명상가는 자신과 악연이 있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매우 안드로메다적인 방법을 제시하신 적이 있다. 명상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사람을 불러들여 자신의 오른쪽 뒤(?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에 있다고 상상한다. 그런 다음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나쁜 고리들이 걸려있다고 상상하고 하나씩 그 고리들을 끊어내고 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축원한다. 곧 그 사람이 일어나 나갈 것이고 그것으로 악연은 끝난다. 참으로 안드로메다적이긴 하나 실제로 나는 그 안드로메다적인 메타포에 매혹되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저기 복도 끝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다가온다. 그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입가에 옅은, 그러나 분명한 비웃음을 흘리거나, 심지어는 작은 소리로 그러나 역시, 분명히 들릴 만큼 “재수 없어”라고 혼잣말을 한다고 치자. 어쩔 것인가!

안드로메다에서 내게 전해진 대답은 이것이다. “재수 없어” 뒤에 숨은 메시지를 읽어라. 말하자면 그 사람은 사실, 안드로메다에서 나에게 보내진 사신이다. 나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수억 광년을 지나서라도 나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매우 소중하고 무엇보다 긴박한 메시지일 것.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잘 들어보라. 그것은 “재수 없어”가 아니라 “깨어있어!”이다.

깨어있어, 깨어있어… 나는 혼자 중얼거리다 긴 한숨을 쉰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어색한 대사들을 내뱉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혹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나의 사회화는 매우 더디며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깨어있으라,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분에게, 안드로메다로부터 그 먼 길을 와주신 그분에게 머리를 조아려라, 감사의 뜻을 전해라.

누군가 나를 공격하는 말을 한다면 그 또한 안드로메다로부터의 교신임을 알아차릴 것.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또한 똑똑해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온갖 논리를 동원하여 공격하는 사람과 마주하는 순간, 그때야말로 안을 봐야 한다.

내게도 그만큼의 활활 타오르는 에고가 있음을 이처럼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는 일상의 순간이 또 있을까. 공격받은 나의 에고가 불길처럼 화악 번져 일어날 때에 바로 그 순간, 그것, 그렇지, 그러한 순간… 지금이야말로 깨어있어야 할 순간. 그러니 다 이해하는 척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주억거리지 말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되받아 치지도 말고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딴생각을 하지도 말고. 시험에 임해라. 그저 시험에 임해라. 다만, 마음의 미묘한 움직임을 관찰할 것. 나는 깨어서 이 모든 것을 낱낱이 목격하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