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맙습니다’ 이경희 작가
상태바
[인터뷰] ‘고맙습니다’ 이경희 작가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7.12.14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말이긴 한가보다. 각종 송년회 약속이 달력을 채우고, 한해를 총 결산하는 시상식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최고의 드라마’를 뽑는 작업도 분주하다. 저마다 ‘베스트’는 다르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올 한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드라마를 추억하는 일이 꽤 흐뭇하다.

연이어 전해지는 시상식 소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바로 MBC 〈고맙습니다〉이다. 이 드라마는 제10회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PD와 작가, 연기자들에게 안겨주더니, ‘2007 푸른미디어상’ 가족상까지 거머쥐었고, 이경희 작가는 오늘(14일) 저녁 한국방송작가협회(이사장 박정란)가 시상하는 드라마 부문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한다.

에이즈에 대해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맙습니다〉. 누구나 동의할만한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꼽기에는 다소 주저할 수 있겠지만, 지난 한해 우리의 가슴을 가장 훈훈하게 해준 드라마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번 겨울이 춥지 않게 보내고 있다”는 이경희 작가를 13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작가는 ‘폐인 드라마’로 유명한 〈미안하다 사랑한다〉, 〈상두야 학교 가자〉, 〈이 죽일 놈의 사랑〉 등을 집필한 ‘스타 작가’다. 엄청난 인기를 모은 것은 아니지만 〈꼭지〉, 〈순정〉 등 잔잔하게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도 대표작이다.

“‘고맙습니다’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고맙습니다〉가 연말에 많은 상을 수상하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감사하다. 사람들이 많이 추웠구나, 아팠구나, 보듬어줄 사람이 필요했구나, 싶다. 예상외로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작가협회에서도 상을 받는데. 

죽기 전에 받아봤으면 했던 상이다. 다른 상과 비교할 수 없다.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시상식장에 가면 취소됐다고 할 거 같다.(웃음) 작가들에게 인정받기란 정말 어렵다. 작년엔 수상작이 없었을 정도다. 난 아직 경험과 연륜도 부족한데….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요즘 축하 전화를 많이 받는데 민망하다. 과분하고, 겁도 나고. 그래서 다음에 더 잘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고맙습니다〉는 다 털어냈나? 많은 인기를 얻어서 끝나고 후유증도 컸을 것 같다.  

작품이 끝나면 늘 힘들다. 산후우울증 같은 거다. 그나마 〈고맙습니다〉는 해피엔딩이어서인지 후유증이 길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바뀌듯이, 다른 작품 하면서 잊고 있다. 

-〈고맙습니다〉는 기존의 작품들과 사뭇 다른 드라마였다. 작품 세계에 변화가 있었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순정〉, 〈꼭지〉, 아침드라마 〈사랑밖엔 난 몰라〉 같은 작품들을 해왔고, 단막극에선 휴먼드라마를 많이 썼다. 가치관의 변화나 심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당신께 기적이 되었다면 당신이 먼저 내 삶에 기적을 읽으켜 주었기 때문입니다”란 엔딩 자막이 인상적이었다. 

기획의도에 있던 내용이다. 처음부터 갖고 가고자 했던 이야기였다. 〈고맙습니다〉는 결국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멜로도 아니고. 기서(장혁 분)와 영신(공효진 분)의 멜로는 중요하지 않다. 기서가 자신이 천사란 것을 인식하며 섬에서 기적을 베풀어주는 과정이 중요했다. 이게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다. 

-에이즈를 소재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편견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쁜 게 아니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기사를 봤는데, 에이즈 감염자 사망요인의 30%가 자살이라고 하더라. 병 때문이 아니라 편견 때문에 죽어가는 거다. 그 뒤로 에이즈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같이 앉기만 해도 옮는다거나 모기가 병을 옮긴다는 말이 있는데 다 낭설이다.

2003년 봄쯤 KBS 〈드라마시티〉 ‘햇빛 쏟아진 날들’이란 단막극에서 에이즈를 소재로 한 적이 있다. 〈고맙습니다〉는 그걸 확장한 거다.  

-〈고맙습니다〉가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조사했는데 국민 70%가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그런 말 들으면 보람된다. 내가 작은 삽을 하나 떴구나, 세상이 우리가 같이 어울려가는 숲이라면 숲을 위해 내가 작은 삽 하나 떴구나 싶다. 

“세상에 공해는 되지 않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그동안 상두, 차무혁, 송은채, 봄이, 미스터리 등 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아줄 수 있나? 

굳이 꼽자면 ‘상두’가 작가 인생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상두야 학교 가자〉란 드라마 자체가 그랬다. 〈순정〉이 잘 안 되고 힘들어서 작가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상두’를 통해 스스로 희망을 만든 것 같다. 이런 친구도 잘 사는데 내가 왜 우나 싶었다. 내가 객관화되면서 묘한 경험을 했다. 〈상두야 학교 가자〉를 쓰면서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원래 살던 친구의 삶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작은 일에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런 내게 상두가 희망을 줬다. 

-스타 작가다. 유명해져서 기대도 많이 받고, 부담도 크겠다. 

부담이 많다. 내가 작가주의 작가도 아니고. 내가 드라마 쓰는 기준은 딱 하나다. ‘내 글이 드라마가 됐을 때 내 가족이 부끄럽지 않은 걸 쓴다.’ 시청률이나 이런 건 부가적인 거다.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요즘 드라마는 많이 보나? 

‘미드(미국 드라마)’나 ‘일드(일본 드라마)’를 많이 본다. 〈프리즌 브레이크〉, 〈로마〉, 〈화려한 일족〉 등을 보고 있다. 요즘 하는 드라마 중에선 KBS 〈인순이는 예쁘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장르물에도 관심이 있나? 

할 수 있는 모든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 형사물도 관심 있고, 의학물도 관심 있다. 탐정물도 재미있을 것 같다. 

-차기작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제목은 〈사계〉다. 단순히 계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인생에 있어 봄여름가을겨울을 담는다. 90년대부터 15년에 걸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념과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두 남녀의 치열한 투쟁 같은 멜로다. 다양한 사건과 역사의 회오리에 말려들면서도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꺾지 않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투쟁 같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최문석 PD와 호흡을 맞춘다.  

-작업은 얼마나 진전이 됐나? 

캐릭터 잡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던 드라마다. 오래 전부터 언젠간 꼭 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과 용기가 없었다. 이번에 다행히 기회가 돼서 하게 됐다. 2009년 SBS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작품에서 늘 ‘사랑’을 주제로 한다. 

내가 멜로를 좋아한다. 최문석 PD도 멜로만큼은 자신 있다고 하더라. 최 PD도 나처럼 감정이 짙은 편이어서 잘 맞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한참을 고민하다가)어느 날 한때 내 가슴을 울렸던 드라마를 쓴 사람이구나. 한 계절 울컥했고, 덕분에 어머니의 손을 한 번 더 잡고, 일상과 편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구나, 이렇게. 그런 드라마를 쓴 작가로 생각해줬으며 좋겠다.

난 내 드라마가 깊이 인식되고 팬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럽다. 장애가 되고 올가미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나 시청자 의견도 잘 안 본다. 족쇄가 될 거 같아서. 자유롭고 싶다.

난 그냥 쓰는 거다. 내가 재미있는,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쓰는 거다. 적어도 세상에 큰 공해는 되지 않는 드라마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