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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레스토랑

지난 주 금요일 세실 레스토랑에서 한 토론회가 있었다. PD연합회가 주최한 ‘17대 대선 후보 미디어 정책 평가토론회’, 대선판이 이미 BBK를 빼면 관심 없는 판이 돼 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언론 현업 단체로써 최선을 다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토론회였다. 지난 11월 초 PD연합회는 ‘2007 대선 정책 검증단’을 발족하고 대선 후보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렸었다. 대선 후보들의 미디어 정책과 공약에 대한 검증을 통해 유권자에게 유용한 정보와 올바른 시각을 제공하기 위한 취지였다. 정책과 공약을 계량화하기 위해 질문지를 만드는데 꽤 신경도 썼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를 포함해 일부 후보들이 끝내 답변서를 보내오지 않았고 보내 온 여타 후보들의 답변도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 진 것이다.

결국 분위기 썰렁한 토론회가 돼 버렸다. 토론회를 끝내고 계단을 따라 밖으로 올라오는데, 벽에 붙은 70년대의 민주화 운동 사진들이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역사의 현장, 민주화의 산실’이라는 문구와 함께.

# 여의도 국회의사당

같은 시각 TV 뉴스 속보를 통해 격렬한 난투극으로 뜨거운 현장을 본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BBK 특검 법안을 놓고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의 사활을 건 싸움판을 벌인다. 국회의원들끼리 지팡이로 찌르고 넥타이로 목을 조르고 전화기 통을 휘두르고 몸을 날리고… 

민주화 20년의 한국, 하지만 그 현주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모습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우리의 상식으로 대통령은 도덕과 사회 정의 그리고 권위의 상징이다. 물론 역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지 못 한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더욱 더 그것들을 갈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누가 깨끗이 승복할 것인가? 그렇게 당선된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대통령제는 한국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제도가 된 것인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절망이다.

# 충남 태안

이날 밤 여의도의 난투극 현장으로 시작한 9시 뉴스, 중간에 희망의 현장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며칠 전 충남 태안은 절망의 상징이었다. 사고 유조선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던 엄청난 기름, 서해 바다 위의 거대한 기름띠와 계속해서 밀려와 해안을 뒤덮는 기름찌꺼기는 공포의 쓰나미였다. 많은 사람들이 TV 화면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하지만 곧바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해변에 일렬로 선 끝 간 데 없는 자원 봉사 행렬.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태안으로 몰려 온 것이다. 그들은 강풍과 추위에도 불구하고 해변의 돌들을 일일이 씻어 내고 모래 위의 기름띠를 걷어 내고 있었다. 감동이다.

태안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본다. 절망스러운 대선판, 그러나 그 밑바닥에도 희망이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물론 그 희망은 태안의 자원봉사자들처럼 실천하는 사람들 속에서 솟아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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