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 다큐가 유럽으로 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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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식 MBC PD가 한국방송콘텐츠진흥재단 주관으로 11월28일~12월7일까지 독일  ‘ARD/ZDF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열린 국제공동제작 세미나에 참가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EU FTA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프로그램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후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박건식 MBC PD

지난 11월말 독일의 작은 도시 비스바덴에 있는 연수원에서 찬바람과 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다. 이곳에는 독일의 양대 공영방송 ARD와 ZDF가 공동으로 세운 미디어 아카데미가 있었는데, 여기서 필자는 10여명의 PD들과 함께 방송콘텐츠진흥원이 의욕적으로 준비한 국제공동제작 연수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특히 다큐멘터리 국제공동제작은 지금 한국에서도 위기에 대한 해법중 하나로 여러 방송사에서 진지하게 모색되고 있는 중이 아닌가? 다큐멘터리 국제공동제작은 드라마나 예능에 비해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이 적다는 점에서 아시아를 뛰어 넘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주요 장르로 기대되고 있다. 또 최근 롱테일(Longtail) 전략에서 보듯, 다큐멘터리는 순간 매출은 폭발적이지 않지만, 지속적인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고부가가치 아이템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금은 한국과 EU의 FTA 논의가 진행되면서 한국의 프로그램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이번 연수는 필자에게 유럽 방송과 국제공동제작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모색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리였다.

먼저 필자는 현장에서 다양한 강의의 행간을 통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국제공동제작의 실제적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세금문제였다. 프로그램 수출을 하게 되면, 상당한 액수의 부가가치세를 물게 되는데, 국제공동제작의 형태로 하면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인 것이다.
둘째는 유럽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공동제작기금을 따낼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만 해도 다양한 제작지원기금이 널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기금으로는 1990년대 EU 시청각 제작을 강화하기 위해 생겨난 ‘Media Desk’가 있는데, 제작비의 5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FFA, BKM 같은 전국 기금과 지역적 단서가 붙는 FFF 바이에른 같은 지역기금이 있다. 이들 지역기금은 3백만 유로 이상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나 지역경제효과를 고려, 해당 지역에서 촬영해야 하거나 지역 스태프를 고용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다.

 

만약 현지의 방송사나 독립제작사들과 공동제작을 한다면 한국의 지상파나 독립제작사들이 이러한 기금을 활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한-EU FTA를 앞두고 이러한 정보를 충실히 축적해두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강의 외에도 한국 PD들의 피칭(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IMTV(신성필PD)’에서는 ‘DMZ의 학’을 주제로 기획안을 발표하였는데, 유럽의 PD들은 DMZ의 ‘철조망’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학’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즉 동물다큐는 이미 유럽에 널려 있고, 자신들은 남북의 분단 상황과 비무장지대가 갖고 있는 정치적 상징성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유럽 PD들은 프리젠테이션 화면 중에서 북한 군사들이 축구를 하는 장면을 가장 관심 있어 했다.

시네텔(김민화PD)에서는 ‘세계의 아동’시리즈로 볼리비아의 광산촌에서 일하는 아이, 케냐의 맨발의 마라토너 등을 피칭했는데, 유럽에서는 이미 이런 형식이 수없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궁금했다. 유럽에서 먹히는 아이템은 도대체 뭐지? 유럽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단연 북한 관련 아이템이었다. 북한의 생활상이 담긴 프로그램은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했다. 이번에 발표한 ‘DMZ의 학’은 이미 아르테TV와 공동제작협의에 들어갔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교육’이었다. 이들은 왜 유럽에 한국인 음악가들이 급증하는지, 유럽보다 더 유능한 음악가들이 나타나는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의 음악교육시스템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한국의 음악과외 등을 취재하면 훌륭한 공동제작아이템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요즘 유럽에선 중국과 태국 등 아시아에서 노후를 보내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공동제작으로 하면 좋은 성과가 나올 것 같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제작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프로그램의 문법이 판이한데 이를 어떻게 조절할지가 관건이다. 한국 PD들의 프리젠테이션을 본 유럽 PD들은 한결같이 지나치게 많은 내레이션과 눈물짜기식 음악을 유럽진출의 최대의 걸림돌로 꼽았다. 이런 구성에 대해 유럽인들은 마치 신파극처럼 이해했다.

또 하나는 사전기획의 차이였다. 유럽에선 어떤 다큐멘터리라도 충분한 사전기획을 거쳐서 드라마처럼 대본을 만들어서 촬영에 임한다. 그런데 우리의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대본이 없는 상태에서 공동제작을 협의하기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여기에 따르는 시간과 엄청난 경비도 상당한 장애로 다가온다. 저작권 협상도 만만치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난점은 어려운 고개임에는 분명하지만, 넘기 불가능한 산은 아니다. 이러한 난점들을 하나하나 극복한다면, 우리의 다큐멘터리는 한-EU FTA가 체결될 무렵에는 이미 유럽시장에 안착해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유럽시장에 대한 안목을 넓힐 기회를 준 방송콘텐츠진흥재단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추신: 유럽에서의 국제공동제작 세미나를 하면서 오히려 남북 간의 공동제작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강사로 나온 한 독일 PD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당시 동독 PD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물론 이들은 약속을 지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과정을 공동으로 제작했다. 우리도 남북 PD들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어 통일의 지점에서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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