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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감옥 속의 ‘죄수’들장형원MBC 교양제작국
  • 승인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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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긴 방황의 길을 마치고 방송사 입사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mbc에 재직 중인 한 지기(知己)를 만나 ‘방송사란 어떤 곳인가’ 물어보았다. 대뜸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웬만하면 하던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낫겠다. 방송사가 그리 좋은 대안은 아니다’라고 하길래 당시에는 그런 친구의 모습이 가진 자, 있는 자의 여유 정도로 여겨져,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마냥 부럽게만 보였다.막상 방송사에 입사하고 나서, 그 친구가 왜 그런 충고를 했는지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촬영일자는 잡혔는데 아이템이 정해지지 않아 하루 섭외하고 하루 촬영했던 일, 부족한 편집실 때문에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디지털 편집실이 비기를 기다렸던 일, 갑자기 프로그램 홍보 예고가 필요해 성우 섭외하고 편집하여 스튜디오 부조정실로 뛰어올라가 반나절만에 예고를 만들었던 일, 마지막 방송시간까지 완제가 끝나지 않아 방송 10분전에 완제 테입을 들고 주조로 뛰어내려갔던 일 등 2년 반 동안의 ad생활은 어떤 선배님이 말씀하신 대로 매일매일 독립전쟁을 하는 것 같았다.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동안 어느 누구도 선뜻 도와주지도 않고 우는 소리 한다고 해서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그야말로 혼자 전쟁을 치루듯이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여기에 방송의 아이러니가 있다. 자기 일을 할 때는 마치 혼자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지만, 한 프로그램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텔럽에 올라가는 수만큼이나 많은 스탭들의 도움, 그것도 그들이 가진 능력을 프로그램 속에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녹여낼 수 있는 협업 체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d선배들은 부족한 제작환경과 한정된 자원 등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번민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ad는 pd선배들의 요구와 여러 스텝들의 희망 사이에서 양쪽 입장의 접점을 찾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도처에서 고민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pd선배들과 ad 제현들을 보면, 우리는 프로그램에 같혀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판옵티콘이라는 원형감옥에 갇힌 죄수처럼…(이 원형감옥은 중앙에 있는 감시자를 중심으로 원둘레에 수감실이 배치된 형태로, 이 감옥이 기존의 감옥보다 효율적인 것은 죄수 자신이 스스로 갇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됨에 따라 자기자신을 스스로 가두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 프로그램에 매진해야 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이고 당위이지만, 가끔은 우리가 프로그램에 바쁘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프로그램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그 속에 안주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원형감옥 속에서 스스로를 가둔 죄수처럼, 프로그램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감시’하는 체제에 순응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통합방송법이다, mbc 민영화 음모다, 방송계가 새로운 판으로 변하려 하고 있는 이 때, 우리의 적은 바로 우리인지도 모를 일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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