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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언유착’에 관하여

|contsmark0|최근 들어 많은 언론인 또는 언론인 출신이 정부 부처에 중용되고 있다(본보 1면 기사 참조). 주로 청와대 공보실 또는 정부내 언론 관련 부서의 요직을 점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개 신문 출신, 기자 출신이며 현 정권과 지역 기반이 겹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원 소속 매체사에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갈등을 빚고 와신상담하다가 어떤 연고와 계기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정부 부처 진출을 새로운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 수 있을 듯하다. 거창하게 헌법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들 필요도 없이 언론인 출신의 정부 부처 진출을 불문곡직 백안시만 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쩐지 미덥지 않다. 권력과 언론은 모름지기 길항적 관계에 서 있어야 하고 특히 언론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그 본령으로 해야 한다는 케케묵은 얘기를 여기서 또 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시민운동가나 교수가 어느 날 정관계에 진출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언론인의 ‘변신’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언론사(言論史)가 안고 있는 권언유착이라는 지울 수 없는 오욕에서 기인된다. 지난 날 박정희 정권 때 일단의 신문 출신인사를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대언론 홍보작업과 언론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할 목적으로 정부부처에 신설된 공보관에 특채함으로써 시작됐다는 언론인의 정관계 진출. 그로부터 정통성 없는 정권이 자행하는 당근과 채찍에 순치되면서 언론인의 변신은 줄을 이었다. 탄압으로 회유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또는 적극적인 엽관운동으로. 이런 저런 이유를 대겠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정권에 도구적으로 동원됐고 ‘아는 사람이 더한다’는 속설대로 정권을 위하여 철저히 봉사했었다. 그 우울한 기억이 투사되면 오늘의 이 풍경도 결코 아름답게 다가오지는 않는다.권력의 정당성이 없던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는 반론, 혹은 그때 잘못 운용됐다고 해서 영원히 그러란 법 있는가 오히려 이런 시기에 전문성으로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것이면 장려할 일 아닌가 하는 주장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것도 아닌 언론 종사 경험에서 전제되는 전문성 즉 언론의 메커니즘과 언론사 내부의 인맥과 생리를 노하우로 삼는다는 점에서 언론 경력을 ‘팔아먹는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렇다할 유예기간도 없이 ‘입신’한 일부 인사의 경우는 우리 정치의 폐단인 지역구도에 편승하거나 현직에 있을 당시의 어떤 활동과 연관된 논공행상 혹은 보상적 성격마저 띠고 있어 이들의 정관계 진출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93년 현재 ‘권력’에 진출한 언론인들은 117명에 달했는데 모두가 기자 출신인 이들 중의 83. 8%는 신문 출신이고 약 12%만이 방송 출신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정치권으로 진출한 이들 중의 대부분은 당시 여권 소속이다(강명구, 한국언론 전문직의 사회학, 1993, 나남).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같은 내용을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앵커 등 방송 출신이 좀 많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새로이 늘어난 언론 출신 정관계 진입 인사들은 대개가 현 집권층 주변일 것이다. 그것을 이번 호 연합회보 1면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해당인사들이 자신의 변신을 어떻게 설명하든 우리의 풍토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거칠게나마 보여준다.‘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란 말은 제4의 권력인 언론을 지칭하는 말로 언론의 감시 기능과 여론 기능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연유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이 말은 ‘의사 지위’(pseudo status) 의식을 가진 일부 언론인과 권언유착형 언론인들에 의해 인적으로 집단화된 커넥션을 뜻하는 말로 다가온다. 즉 “언론사(言論社)에서 오랫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언론인들의 지식이 정치 구조의 특수성을 이용한 개인들의 권력지향욕으로 인해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 및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게“(강명구, 앞의 책) 된 것이다. 작금의 ‘신권언유착’은 일부 기자들을 필두로 한 우리 언론인들의 직업의식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야말로 쿼바디스 한국언론이다.혹시 오늘 필자의 글을 ‘배가 아파서’, 혹은 ‘못 먹는 감(?) 찔러보기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본다. 만약 그러하다면 바로 이 대목에서 한국 언론인들의 지성과 교양의 수준이 또 한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본보 발행인>|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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