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친한 정도에 따라 (언론)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지난 해 5월에 한 말이다. 이 당선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표리부동한 발언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토요일 경향 신문은 인수위원회의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 의혹을 단독 보도하자 인수위는 즉각 이번 사건이 문광부에서 파견 온 박모 전문위원의 단독 행동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수위측의 해명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 그들이 했던 말들이 아직 귓가에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연말 대선 과정에서 MBC의 몇몇 프로그램이 BBK 의혹을 추적하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집권하면 MBC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 민영화해 버리겠다.”고 협박했었다. 또한 이명박 캠프에서 미디어 정책 핵심 참모로서 활동했던 인수위 진모(조선일보사 기자 출신)씨는 “네이버(NAVER)는 평정됐지만 다음(Daum)은 폭탄”이라는 발언도 했었다. 이런 발언들을 뻔히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수위의 간단한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권의 개발지상주의적, 과거회귀적 ‘성향’과 정책들을 볼 때도 그렇다. 따라서 인수위측의 해명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보일 뿐이다.

이 시대에 5공식 언론 사찰 발상을 하다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다. 1980년 신군부는 ‘K 공작 계획’을 통해 언론인들의 정치 성향과 정책 주장을 분석하는 표를 작성, 언론을 통제했었다. 당시를 경험한 언론인들은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그 방식이 좀 더 은밀해졌지만 그 본질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 대상에는 ‘광고주 성향 파악’ 지시까지 들어 있었다. 광고를 통해 언론을 조종하고 탄압하는 방식은 이미 70년대 중반 동아 자유 언론 수호 투쟁 과정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방식이다.

이번 인수위는 출범 당시부터 인수위원장 자격이 문제 됐었다. 이경숙 위원장의 과거 국보위 입법의원 전력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의 뒤편으로 5공 당시 언론사찰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도 이 위원장의 전력 때문일 것이다. 이 위원장의 인식으로 볼 때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는 무의식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인수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 물론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선자가 국민들께 진정으로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고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당선자는 인수위가 다른 것은 다 잘 해 왔는데, 이번 사태는 옥의 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옥의 티 정도로 보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 지형은 한나라당의 독주가 예상된다.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이 총선에서도 압승할 것이라는 여론 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 둘 다를 장악하고 여론 권력마저 장악하려고 하는가? 만일 그렇게 되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는 파괴된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현업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어제 긴급기자 회견을 한 데 이어 오늘부터 1인 릴레이 시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초기 단계에서 폭로됐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언론은 이 문제를 계속 추적 보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대 언론 정책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본연의 임무인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은 더욱 살아나야 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