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족일보 고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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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족일보 고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씨
“사법 살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8.01.22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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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일보 고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씨

‘민족일보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간첩혐의자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하고 북한의 활동을 고무·동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누명을 벗었다. 거짓을 진실로 바로잡는데 47년이 걸렸다.

당시 28세의 청년이던 조용수 사장의 동생 용준 씨는 70대의 노인이 되었다. 조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민족일보사건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는 등 젊음을 바쳤고, 47년을 견뎌냈다. 마침내 받아낸 무죄 판결. 소감이 남다르다.

“감개무량하지요. 정의롭고 현명한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 같이 억울한 많은 사건들이 계류 중인데,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함을 면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1961년 5월 18일, 조용수 사장이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체포됐을 때만 해도 상황이 끔찍한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상황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거란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쿠데타의 대상이 민족일보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잠시 공포 분위기에서 겁을 주다가 풀어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형님 본인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조용수 사장은 체포된 지 7개월만인 그해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란 이름으로 살해됐다.

“생사람을 때려잡았지요. 그때 형님의 나이가 32세였고 재일교포였습니다. 정권에 대한 잠재적 비판 세력들이라고 해도, 맘에 안 들면 추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때려잡나요. 이렇게 야만적인 나라, 흔치 않습니다.”

그 억울함을 어찌 말로 다 할까. 조 씨는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고통”이라고 했다.

형님의 죽음과 함께 남은 가족들의 삶도 고통 속으로 잠겼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공중분해 됐다. 연좌제 때문에 공직 진출은커녕 개인 회사 취직도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건 자영업이나 발로 뛰는 일뿐이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했지요.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말해 무엇 합니까.”

형벌과도 같았을 47년의 세월.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한들, 죽은 형님이 살아 돌아올 리 만무하다. 수십, 수백억의 보상과 당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조 씨는 “형님이 시대적인 희생양이 된 것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1961년 ‘민족일보 사건’ 재판의 배석 판사였던 이회창 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법률가라면 그런 재판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회창 씨가 그때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일이고, 진실화해란 용어도 있지 않습니까. 서로 화해해야지요. 생각하면 괘씸하기도 하지만….”

조 씨는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배상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보다 총괄적으로 국가가 반성해야 합니다. 사법부에서 모든 법률에 비춰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바로잡은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국가에서 사과해야 마땅하지요. 누가 됐든 대통령이 사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책임지길 바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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