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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중 EBS 지식정보팀 PD

▲ 김한중 / EBS 기획다큐팀 PD
“1스튜디오 3분 남았습니다...”

주조정실로부터의 콜이 인터컴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생방송 토론은 이제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었다. 패널들의 마무리발언 2분, 사회자의 엔딩멘트와 엔딩크레딧 30초씩 1분, 그렇게 엔딩모드로 접어들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패널들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선 공방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쪽은 법대 교수, 다른 한쪽은 현직 검사였다. 사회자는 난감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가까스로 엔딩멘트를 마치자 드디어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그 때였다. 두 사람이 뒤엉켰다. 진짜 싸움이었다. 사회자가 벌떡 일어서 두 사람을 덮쳤다. 나는 얼른 모니터를 확인했다. 아직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고 세트 한가운데 세 남자가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토론자들의 무력충돌이 생방송되다니...그 때 나는 울었는지 웃었는지...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 순간 직후 방청객들까지 가세한 장외 토론이 빈 스튜디오에서 새벽녘까지 이어졌고, 시청자들의 온라인 토론이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으며, 뜨겁게 맞붙었던 두 토론자는 인근 호프집에서 자체적으로 끝장토론을 펼친 끝에 결국은 어깨동무하고 사이좋게 귀가했다는 후일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따져보니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그 때 EBS엔 ‘생방송 난상토론’이 있었고 나는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매주 짜릿함을 만끽했던 2년차 조연출이었다. 난상토론의 유일한 모토는 오직 ‘치열함’이었다. 치열한 논쟁에는 치열한 토론자가 있기 마련, 그들을 섭외하는 과정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지만 치열한 토론이 내뿜는 에너지는 제작진들을 사로잡았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난상토론’은 치열한 토론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EBS에 난상토론은 없다. 같은 시기에 방송되었던 심야토론과 100분 토론은 해를 거듭해도 여전히 건재하지만 5년 가까이 방송되었던 난상토론은 무슨 이유에선지 간판을 내리고 4년여 기간동안 무려 4번씩이나 간판을 바꿔달게 되는 비운의 프로그램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EBS의 경영진이 바뀐 주기와 대략 일치한다.

난상토론은 왜 없어져야 했을까. 난상토론이 추구하는 토론의 방식이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당시 시청자위원의 건의가 난상토론 폐지론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맥빠지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급 기야 지난주 PD저널의 표현대로 ‘토론프로그램의 기본마저 잊어버렸다’는 모욕적인 비판에 대해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EBS 토론프로그램은 처참하게 전락해버렸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치열한 토론이 비교육적이라는 반교육적인 사고방식이 교육방송을 농단했던 부끄러웠던 과거가 슬프고 아프다. 그 와중에 속절없이 명멸했던 프로그램들이 떠올라 괴롭다. 그리고 지금은...아...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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