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언론이 만든 서해안 주민들의 우울한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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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언론이 만든 서해안 주민들의 우울한 설날
[기고]
  • 송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 승인 2008.02.14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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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민족의 명절 설이 지났다. 설 연휴 막바지에 발생한 ‘숭례문 화재’가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으며 우울한 명절을 만들었지만, 사실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서해안 주민들일 것이다.

▲ 송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서해안 기름유출사고’의 검은 재앙이 두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어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급한 불은 껐다고 하지만 생태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걸릴 만큼 오염이 심각하다고 한다.

사고지역 인근 지역민들은 생계를 잃고 비관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 1월에만 지역 주민 세 명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일에도 어민 한 명이 분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보도에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은 있지만, 정작 어떻게 환경을 되살리고 피해주민들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을지를 살펴보는 핵심적 내용은 빠져있다. 설 연휴 기간에도 절망에 빠진 서해안 주민들의 ‘명절나기’ 모습은 방송보도에서 앞 다퉈 다뤄졌지만 앞으로의 문제인 이들의 생계보장에 대해서는 그 어느 언론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를 보도하는 대부분의 언론들은 피해규모나 상황,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은 부각하면서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한겨레 정도가 꾸준히 사고원인을 분석하고, 책임과 보상문제에 대해 거론했을 뿐 나머지 신문들은 이 부분에 대한 보도가 소홀하다 못해 아예 회피한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 중앙·동아일보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사실상 외면했으며, 오로지 ‘봉사’만을 강조했다. 중앙일보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된 기사에서 사고의 책임과 원인을 다루는 기사는 물론, ‘삼성중공업’ 이름을 거론한 기사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송보도 또한 원인과 책임문제 등 사고의 본질적 문제 보다는 현장 중계나 자원봉사 미담보도에 그쳤고, 삼성중공업이란 이름을 접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과 허베이호의 충돌’ 운운하는 식의 단순 언급 정도마저도 그나마 SBS에서는 사고 다음 날인 8일 등장했고, KBS에는 12일, MBC에는 18일이 돼서야 다뤄졌다. 그 이후에도 방송에서는 ‘삼성중공업’은 거의 실종되었다. 사고 경위를 전하면서도 사고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을 밝히기보다 ‘예인선’으로 보도하며 삼성을 숨겨주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특히 KBS는 사고가 일어난 열흘 뒤인 12월 18일, SBS는 사고 한 달째인 7일에야 삼성의 책임문제를 거론했고, 심지어 MBC는 1월 9일에 와서야 삼성의 과실과 배상문제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언론이 이번 사고가 마치 ‘천재(天災)’인 양 보도하고 자원봉사자의 미담을 부각시킴으로써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나 다름없는 삼성중공업은 언론보도의 초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언론들이 보도에서 ‘태안’과 ‘서해안’을 피해 지역으로 낙인찍으면서도 피해 보상 문제를 외면한 탓에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더구나 피해보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정부와 책임을 회피하는 삼성의 행태에 절망한 주민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를 짤막하게 다루는데 그쳤다. 세 번째 주민이 목숨을 끊고 나서야 언론들은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삼성중공업의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1월 21일 검찰이 이번 사고를 ‘쌍방과실’로 결론내리고 ‘삼성중공업의 중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자 ‘삼성 봐주기 수사’라는 반발 여론이 거셌다. 특히 피해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격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이러한 비판여론을 전하기는커녕 검찰 수사결과만 크게 부각해 ‘삼성중공업 면죄부 주기’에 동참했다.

이번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인 삼성의 후안무치한 발뺌도 분노를 자아내게 하지만, 사고원인을 밝히고 당연한 책임을 물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한 언론들의 태도 또한 피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절망을 던져주고 있다. 언론들은 이제부터라도 서해안 주민들이 더 이상 목숨을 끊지 않고 피해복구와 생계터전 마련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피해보상 문제와 삼성중공업의 책임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다음 명절에도 ‘피해 주민들이 우울한 명절나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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