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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슭 SBS 편성기획팀 PD

IQ 430? 우스웁다! 축지법? 가소롭다. 헤아리지 못 할 바 무어냐, 미처 닿지 못할 곳 어드메냐. 손 안에서 씨앗을 싹 틔우고, 눈 떠 천 리 밖을 내다보며, 손바닥에서 기(氣)를 뿜어 암덩이를 내치고, 가벼이 가부좌로 몸을 띄워 구애됨을 없애는, 진정 능력자님을 모시어라.

▲ 김기슭 SBS 편성기획팀 PD

누가 알리요, 단지 우매한 중생들이 그 능력을 의심하사 어리석은 그들 눈앞에서만 신통력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 어찌 보이지 않는다 해서 세상에 없다 할 수 있으리오. 어찌 만져지지 않는다 해서 천지간에 아득하다 하리오. 그리하여, 우매한 중생을 위해 하찮은 소행(小行)으로 능력을 믿게 하사, 손끝으로 형광등을 켜고,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휘고 부러뜨리며, 추 하나로 땅 속 물길을 알아내고, 손 안대고 물건을 움직이며, 이마로 글씨를 읽고 숟가락을 곧추 세우심이라.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사는 중생들아, TV를 켜라. 신비하고 놀랍도다. TV를 믿어라, 능력자를 믿어라. TV를 만드는 사람들아, 의심하지 마라, 그냥 소개하라. 있음이다, 있다 하라. 나의 능력을 보여 줄 지어다. 중생들은 믿는다, TV를 믿는다, 능력을 믿는다, 나를 믿는다. 그들은 그저 신기하고 놀라움을 갈망할 지어다. 세상에 없는 세상이 기다리는 신비로움은 이 능력자가, 이 성인(聖人)이, 이 도인(道人)이 연출하는 하찮은 소행(小行)인 바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은 오라. 형광등을 켰던 손끝으로 기(氣)를 불어 넣어주고, 숟가락을 휘던 손가락으로 나쁜 기운을 빨아내고, 땅 속 물길을 찾던 추로 네 집터를 가늠할 것이다. 손바닥과 이마로 기를 뿜어 네 몸 속 죽음의 기운을 치유할 터이다. 나의 물을 마시고 나의 사진을 품어라. 사악한 돈의 기운은 내다 버려야 한다. 나에게 와 제단에 바쳐라. 오라 능력자의 품으로…….

TV여 나를 검증마라. 너희는 그저 나의 능력을 소개하고 관심을 받아라. 재밌어 하지 않느냐, 그거면 되지 않느냐, 그걸로 먹고 살지 않느냐. 나를 따르다가도 세상을 떠나는 중생들, 나의 제단에 돈을 모두 바친 어린 중생들, 고통의 쳇바퀴에 더 얽매여도 너희는 괴로워할 까닭이 없다. 너희 역시 몰랐을 뿐 너희가 속인 건 아니지 않느냐? 너희는 과학이라는 갑갑한 담벼락 그 위를, 그 뒤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미스터리라, 초능력이라 불러도 좋다. 기적이라 부르면 더욱 좋다. 행여 네 눈앞에서 내 능력이 조금 모자라다 하여도 믿어라, 잘라라, 이어라, 붙여라. TV란 그런 것이 아니더냐. 자, 내 머리 뒤로 후광을 올려라.

코쟁이 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이렇게 떠들었다, “사이비 과학은 과학보다 이리저리 생각하기 쉽다. 왜냐면 쓰라린 진실과의 대면을 훨씬 쉽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그 책이 그의 마지막 저술이다. 죽어가면서까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악령이라고, 사이비라고, 혹하게 함이라고. 과학이라는 좁아터진 잣대로 애당초 나를 재단함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 현실은 팍팍하고 진실이란 고통스런 것이다.

TV여 나를 주목하라, 나는 도인이요, 능력자며, 유리 겔러요 기적 그 자체니라. 힘들고 고통스런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 TV를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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