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규제풀고, 지상파 손발묶고…역차별이 부르는 지상파 위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저널 창간 20주년 특별기고]지상파 독과점은 허구다(下)

지난 호에 이어 그 후속 글을 싣는다. 공교롭게 최근 방송위원 김우룡 교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상파위협론은 허구라고 말하기도 한 시점이다. 양자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이 시론은 전환기에 처한 방송계에서 독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본고는 여의도클럽에서 발행하는 <여의도저널>에 일부 중복 게재되었음을 알린다. <편집자주>

< 글 싣는 순서>

  ①  지상파 52년의 역사적 맥락
  ②  지상파의 사양(斜陽)과 ‘독과점’론의 함정

 

(7)2002 - 2007 케이블의 발호, 지상파의 사양(斜陽)

▲ 방송3사(KBS,MBC,SBS)

2002년 지상파 광고는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변곡점을 지나서 이후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연 천억 씩 상당의 광고물량이 지상파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 빠져나간 대부분의 광고는 케이블 등 뉴미디어로 갔다. 바야흐로 지상파 사양기다. 동시에 케이블의 발호(跋扈)기다. 방송 분야만 놓고 매출액을 따졌을 때 지상파가 차지하는 비중도 현저히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반면 케이블 방송은 95년 12%에서 2000년 16%, 2003년 21% 등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매출액의 연평균 증가율은 지상파가 5.6%인데 비해 케이블은 18%고, SO는 무려 37%에 달한다.

매출뿐이 아니다. 시청점유율 측면에서도 2001년 지상파가 26%였는데 2003년 이후 급락을 보여 2005년은 20% 수준이다. 같은 기간 케이블은 5%에서 11.5%로 수직 상승했다. 시청률조사회사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2002년 10월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점유율은 71.7%, 케이블방송사는 27.2%였다. 그러나 5년 뒤 2007년 10월에는 상황이 급변한다. 지상파 56.5%, 케이블방송 43.5%로 격차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 모든 수치가 보여주는 그대로 지상파는 의심할 여지없이 완전히 사양 산업이다. 2002년의 광휘는 해가 질 때 일몰 직전 마지막으로 서쪽 하늘을 농염이 불태우고 사라지는 그것이었더란 말인가. 이래도 지상파 독과점이라고 계속 말할 것인가.

▲ MBC <주몽>

2004년은 지상파와 케이블의 균형조차 무너지는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될 만하다. 방송위원회가 해마다 발간하는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 2005년판에 따르면 전체 방송서비스 매출액 가운데 케이블TV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전체 방송서비스 매출액 가운데 지상파방송(TV·라디오)의 매출액은 45.6%를 차지한 데 비해 케이블TV는 종합유선, 중계유선, 방송채널사용사업을 포함해 51%였다. 이를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케이블TV업계는 3조9,729억 원으로 전년(2003년 매출액 3조4,388억 원)에 비해 10% 가량 증가한 수치다.(PD연합회, <한국PD연합회 20년사>, 제5장 견인기)

김재영은 2006년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다매체 다채널 시대, 지상파방송 규제의 재점검>에서 ‘지상파 독과점’은 실재하지 않는 현상으로, 지상파가 매체 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인과적 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논증하였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산업적 지표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지상파방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판단 기준인 75%에 미치지 못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매체경제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지상파방송의 독과점적 지위는 경제적, 수용자, 사회문화적 차원 모두에 걸쳐 실재하는 현상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따라서 과대평가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상파방송 사업은 고유의 속성으로 인해 진출입 자체가 자유롭지 않으며, 네트워크 산업으로서 ‘자연독점’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김재영은 ‘독과점’ 대신 ‘시장 우월적 지위’라는 표현을 채택하고 있다.(김재영, <다매체 다채널 시대, 지상파방송 규제의 재점검>, 12- 18쪽)

2007년의 경우 아직 공식집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년에 비해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은 다소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송 3사의 광고는 역시 전년대비 700억 내외가 빠져 나갔다. 2007년 <주몽>, <며느리전성시대>, <태왕사신기>, <이산>, <내 남자의 여자>, <쩐의 전쟁> 등 화제작이 풍성했지만 방송사간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광고의 하향 추세를 뒤집지 못했다.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 콘텐츠에 경쟁력이 없어 광고 마케팅을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매체 수용방식과 시청 형태의 변화는 지상파 방송의 위상과 생존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상파의 직접 수신은 2000년 72%에서 2004년 17.1%로 떨어졌다. 케이블은 200년 16%에서 2004년 73.4%, 2007년 추계로는 80% 이상이다. 단시일 내에 지상파와 케이블의 지위가 역전이 되었다. 2007년 현재 추산해서 전국 1800만 가구 중 1400만 가구가 케이블에 가입해 있고, 200만 내외가 스카이라이프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비지상파적인 방법으로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다. 플랫폼 기반이 상실된 것이다. 이는 곧 지상파의 광고효율성 체계가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정적으로는 한정된 광고시장에 뉴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이들의 수익모델이 서로 중첩되고 있다. 광고만이 모든 매체의 살길이다. 이는 과도한 시청률 경쟁과 상업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은 제한된 재원인 광고를 놓고 모든 미디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방송위원회는 이른바 매체균형발전론으로 지상파의 손발을 묶고 케이블에는 규제를 풀어주고 있다. 이것이 지상파가 심대한 타격을 입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 SBS <쩐의전쟁>

(8)무엇이 문제인가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위기론은 적어도 지상파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실체로 인정되지 않는 듯하다. 매일 보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들이 외견상 멀쩡히(?) 나오기 때문일까. 지상파 방송계에는 월급이 수년째 동결되거나 심지어 삭감되고, 프로그램 제작비가 감축되는 상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프로그램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드라마,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경우 대형 기획사에게 주도권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것으로는 지상파의 위기상황을 인식시키기에 모자라는 것 같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거나 직원들이 몇 달째 월급을 못 받는다는 정도의 얘기가 나와야 하는 것일까.(강준만은 <한국대중매체사> ‘노무현 정권하의 대중매체’(2003 - 2006) 장에서 ‘지상파 위기론’을 별도로 기술하고 있다.)

지상파가 속병이 든 실정은 애써 외면을 하거나 심지어 ‘그것 봐라, 쌤통이다’라고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 날 당신들 방송은 독과점의 우월적 조건 속에서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이제 맛 좀 봐라’는 심리가 있다면 이는 적절하지 않다. 모두(冒頭)에서부터 다소 장황하게 우리 방송 역사에 독과점기는 없었다는 것을 논증한 이유도 이런 인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급속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도 정책권자나 당국은 종전 ‘지상파 독존 시대(독과점이 아니다)’의 기준으로 지상파를 바라보고 있다. 그 결과 지상파에 대한 이른바 비대칭 규제가 계속되고 있다. 전술하였듯 매체 수용방식의 변화로 지상파는 이미 사실상 PP 중의 하나로 전락해 있다. 케이블 가입률이 80%대를 육박하는 상황인데도 케이블이 유치산업(幼稚産業)일 당시의 각종 특혜가 그대로 온존되고 있다. 이른바 매체균형발전론은 비대칭 규제로 이어지고 이는 지상파에 대한 역차별로 돌아온다.

지상파 방송은 국민의 것이다. 위기상황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지상파가 무너지면 무료 보편적 서비스와 방송의 공적 영역이 실종된다. 1956년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방송은 권위주의 시대에 기복과 굴곡은 있었지만 스스로의 뼈저린 노력으로 국민 앞에 거듭 났다. 우리 사회의 의제설정과 여론을 선도했으며, 사회통합에 이바지했다. 독재 정권 시대에 이산가족 찾기 마라톤 생방송을 했고, IMF 직후에는 금모으기 생방송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방송으로 통합적 역량을 보였다.

▲ KBS <며느리 전성시대>

<사랑이 뭐길래> 이후 <겨울연가>, <대장금>, <올인> 등의 한류 콘텐츠로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 것은 특기할 일이다. 국내의 치열한 경쟁 와중에 어느 새 우리 방송이 세계무대에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상파 방송의 역량은 케이블, 위성방송, DMB 등 새로운 미디어 출범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콘텐츠 기반으로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졸고 ‘방송 80년 지상파를 변명함 - 그래도 지상파밖에 없다’ <PD저널> 2007년 6월 20일)

가입비와 시청료를 내야 하는 유료 매체에 비해 지상파는 소외계층에게 정보와 문화의 기회를 주는 무료 매체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언론정보 기능과 문화향수 기능을 지상파에 의지해 왔다. 또 여전히 지상파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지상파의 공공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상파의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면 훗날 사가(史家)는 지금을 ‘지상파 사양기’를 지나 ‘지상파 역차별기’나 ‘지상파·케이블 억지균형 유도기’ 또는 ‘지상파 붕괴 전조기’라고 쓸 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지상파는 임계점에 와 있다.

지상파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은 좋다. 지상파 방송사는, 현장 방송인들은 얼마든지 그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할 의지로 충만해 있다. 부당한 매도(罵倒)나 근거없는 때리기는 적절하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으로나 현상적으로나 ‘지상파 독과점’은 실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없다. 굳이 양보하면 뉴 미디어가 출현하기 전에 일시적으로 ‘지상파 독존(獨存)’ 혹은 ‘자연독점’의 시기는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타 미디어의 진입을 지상파가 방해하고 가로막으며 지위를 남용한 적은 추호도 없다.

작금 곧 등장할 새 정부가 방통융합을 말하며 규제완화를 말하고 있다. 또 교차 소유와 겸영을 말하고 있다. 민영화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상파 독과점’이란 말이 묵은 녹음기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부탁하고 싶다. 새 정부가 무슨 일을 도모할 때에 적어도 ‘지상파 독과점’이라는 말을 명분으로 끌어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실재하는 것으로 전제해 정책을 구상한다면 첫 단추가 잘못될 수 있다. “전제가 달라지면 논의의 방향이 달라지며, 전제의 설정이 부실하면 정책의 실효는커녕 부작용만 양산하기 쉽다(김재영, 앞의 글)”. ‘가상의 적’을 때려서는 안 된다. 지상파 독과점은 허구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