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PD가 말하는 소비자고발의 자기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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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VS 프로그램] ③ 소송에 시달리는 PD들, 그들에게 듣는다

  바야흐로 자본의 시대다. 자본을 견제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과 형사소송 등 연출자가 감내하기 힘든 견제가 프로그램에 쏟아진다. 시청자들의 권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PD들의 운명일 것이다. KBS PD협회보 2월호는 자본 견제 프로그램 제작 PD들의 애환과 프로그램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 그리고 자본견제 프로그램의 존재의미를 들어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아울러 우리들의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생각도 들어보는 지면도 함께 준비했다.  <편집자 주>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이하 소비자고발)’이 시작된 지 9개월이 지났다. 처음부터 10%가 넘는 시청율을 기록하며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면서 사랑과 비례해 미움(?)도 커져가고 있다. 단순히 고발당한 업종의 종사자들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시청자게시판을 두들기는 강도가 크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소비자고발>이 만들어내는 파장이 커서일까. 아니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의 집단적 반발일까.

▲ 2007년 11월8일 오후 kbs본관 3층에서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 측이 황토팩을 생산하는 참토원의 김영애 기자회견에 반박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비자고발>은 이념소구형 프로그램이 아니다. 매우 실용적이고 정보추구적인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논쟁을 통한 목적추구를 하지 않는다. 고발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실험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구성이다.

시청자들은 그 과정에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제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다음에 해당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참고로 한다. 피고발자가 보면 <소비자고발>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방송이 나가면 자신들의 물건이나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자기들만 괴롭히냐고 성토한다. 왜 자기들만 괴롭혀서 장사에 피해를 주냐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소비자고발>에서 얻는 정보는 돈과 관련이 있다. 그것도 ‘무엇을 사느냐’에 대한 정보가 아니고‘무엇을 사지 않겠다’는 정보이기 때문에 피고발자 집단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자. <소비자고발>이 지적한 사항을 고치면 당장은 장사가 안돼 괴롭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의 신뢰가 쌓여서 더욱 장사가 잘 되지 않을까. 문제점을 안으로 숨긴 채 계속 간다고 해서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어떤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자본의 시대에 되새겨보는 자본견제 프로그램 <소비자 고발>의 존재 의미
현대는 자본의 시대란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소비자고발>의 존재의미는 이런 시대정신과 관련이 있다. 자본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시대에서는 자본의 독주를 견제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본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자본을 견제할 시스템은 3부와 동시에 언론에서도 필요하다.

<소비자고발>은 이런 시대의 변화에 처음으로 등장한 본격적인 자본견제프로그램이다. 돈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Money talks. 시대에 돈이 모든 가치보다 우선하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타난 프로그램이 <소비자고발>이다. 처음 나타났으니 당연히 바라보는 시선이 낯설다. 실용적인(?) 고발에 익숙치 않은 생산자와 자본가들은 거부감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당장 이익이 떨어지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이런 반발에는 우리 제작진이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변수가 숨어있는 것 같다. 자기 잘못(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그것이다. 우리가 <소비자고발>에서 지적하는 것은 대부분 그 직(업)종 일부의 일탈이다.

▲ KBS <이영돈의 소비자고발> ⓒKBS
그러나 방송에 노출된 후 많은 사람들은 일부의 잘못으로 그 업종 전체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런 비난은 법원의 특정하지 말라는 판단과 배치된다. 특정하지 않기 위해 모자이크를 하면 이는 같은 업종의 다른 업체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소비자)들은 문제업종 전체에 대해 각성된다. 따라서 해당 업종 일부의 일탈이지만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되므로 일부에 대한 개선이 가속화되어 전체가 개선된다. 소위 언론의 동원이론이다(Mobilization Model).

<소비자고발>은 문제제기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이 개선과정을 참지 못하고 당장의 손해를 참지 못하고 모든 분통을 잘못을 지적한 <소비자고발>에 돌리는 자본/생산자의 조급함과 미천함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본/생산자의 저항이 제작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언론의 주요역할은 객관적 문제제기이다. 나머지는 사회의 정화기능에 의해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고발>이 등장한 후 나타난 현상은 이런 언론의 문제제기기능에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고발>의 영향력이 커지자 문제제기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사회의 문제해결기능을 추가하기를 원하고 있다.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인원이 더 필요하다. 더 나아가 학위논문 수준의 실험과 객관적인 일반화도 요구하고 있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왜 <소비자고발>에 다른 프로그램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객관성과 일반화가 요구되는가. <소비자고발>에 나가면 피고발자(업종)의 피해가 더 커져서 그런가. 아니면 각 전문분야 PD들의 전문성과 취재력을 신뢰하지 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프로그램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법과 사회의 프로그램을 보는 눈이 달라졌는가.

열악한 제작여건, 그러나 나는 제작진의 열정과 취재력을 믿는다
나는 소비자고발 PD들과 작가들의 열정과 제작/취재기술을 믿는다. 그들은 우수하다. 그리고 양심적이다. 그리고 제작여건의 현실성도 인정한다. 프로그램 곳곳에는 이들이 좁은 사무실과 좁은 편집실 그리고 제작현장에서 흘리는 피와 땀이 스며있다. 그렇다면 소비자고발에는 우리들의 피와 땀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가.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인가. 피고발자의 강제집행신청인가. 언론중재위의 반론/정정보도인가. 아니면 법의 권위와 힘에 찌들은 우리 PD들의 나약함인가.

감히 말하고 싶다. 소비자고발의 존폐는 천민자본주의의 번영과 깊은 관계를 가질 것이다. 여기서 승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자본에 대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견제가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PD들에게 따뜻한 격려가 아쉽다.

※ 이 기사는 <KBS PD협회보>)(2월호) 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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