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은 정보공개, 국민 알권리 뒷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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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은 정보공개, 국민 알권리 뒷전 ”
KBS ‘시사기획 쌈’ 정보공개율 91%의 허상 밝혀
  • 이기수 기자
  • 승인 2008.02.19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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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정보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1998년부터 시행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은 이 같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신설된 법이다. 세계에서 13번째의 빠른 법 도입, 한 해 30만 청구 건수, 91%의 높은 공개(부분공개 포함)율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시사기획 쌈〉‘그건 몰라도 돼’ (취재 임장원․성재호, 화 오후 11시 30분)는 이 같은 정보공개법이 얼마나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검증했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 공개율 91%는 숫자에 불과한 허울에 가까웠다.

▲ KBS 시사기획 '쌈'의 한 장면 ⓒKBS

현재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의 정보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국가 안보, 외교, 사생활, 부동산 투기 등 정보공개로 인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비공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은 비공개 원칙의 이유를 들어, 제대로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KBS 탐사보도팀은 지난 1년 간 다양한 사례로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직접 시도했다.

비공개 원칙 들어 정보공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난해 2월 KBS 취재진은 국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회의원들의 해외 외교 활동이 얼마나 이뤄지는지 심층취재를 위해 국회의원의 외교 계획서, 결과보고서 등이 포함된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국회는 복사해줄 수도 없고 열람만하고 가라는 반응이 왔다.

이에 따라 탐사보도팀은 지난해 5월 국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지난 1월 말 1심 판결에서 승소했지만 자료를 아직 받지 못했다. 국회는 항소를 검토 중이다.

이외에도 제작진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 정보공개 청구는 매년 신장해왔고 2006년에만 30만건이 넘는 정보공개 청구가 이뤄졌다. 하지만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만족도는 약 62%밖에 되지 않았다. ⓒ KBS

사례1.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수입이 지난해 4월 다시 재개됐다.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에서 다시 등뼈 등이 발견되면서 검역에 문제가 생겼다. 정부는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의 해명서를 받고 다시 수입을 시작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미국의 해명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정부는 ‘대외비’라는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소송이 시작되자 정부는 뒤늦게 미국의 해명서를 보여줬다.

사례2. 제작진은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당시 IMF와 맺은 양해각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이와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외교부에 냈다. 그러나 정부는 외교문제라는 점을 들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IMF의 홈페이지에서는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있었다.

사례3.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IMF 10년을 맞아 대규모 인사들을 사면, 복권시켜줬다. 그러나 역시 사면․복권된 사람들의 전체 명단을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사생활 등을 들어 언론보도에 나가는 명단 이외에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사례4. 지난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을 방문한 뒤 북한측으로부터 송이버섯 4톤을 선물 받았다. 청와대는 이렇게 받은 송이를 사회 각계각층에 1Kg씩 나눠 보냈다고 밝혔다. 그래서 제작진은 청와대 측에 송이버섯 받은 명단 보내달라고 했지만 청와대는 ‘사생활’을 들어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보 공개

우리나라보다 30년 먼저 정보공개법을 도입한 미국은 ‘정보공개’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돼 있다. 제작진은 미국과 한국에 비슷한 사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했다. 제작진은 △공공소유 골프장 한 달간 이용자 명단 △성범죄로 처벌받은 교사 명단 공개 △오세훈 시장의 납세실적과 미주리 주지자 납세실적 등을 비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관련 정보 공개를 모두 공개했다. 미주리 주지자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서 주지자사의 납세실적은 물론 주택의 사진, 주소 등까지 검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부인과 공동명의로 돼 있는 강남 소재의 빌라에 대한 납세실적은 강남구청에 요청했지만 공개되지 않았다.

제작진은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와 한국의 방송위원회 회의공개 과정도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는 누구나 회의를 참관하거나 방문할 수 있었다. 회의록이나 녹취록도 바로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비디오로 회의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과 수화방송도 도입됐다.

그러나 지난 1월 22일 열린 방송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회의 5분이 지나자 촬영이 제지됐다. 방송위원회 측은 “비공개 안건이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0년간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정부 대부분 패소

정보공개법은 제정됐지만 정부의 공개 거부로 행정소송도 부지기수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행정소송의 결과는 어떨까. 제작진은 10년간 정보공개 행정소송 450여 건 가운데 판결이 난 391건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가장 많은 행정소송 상대는 127건을 기록한 지방자치단체였다. 그 다음은 중앙정부였다. 국가가 정보공개 청구와 관련한 승소한 경우는 35%에 불과했다. 국가가 제대로 정부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행정소송 확정판결까지는 491일이나 걸렸다.

▲ 정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도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한 임대아파트분양원가 소송은 10건이 집계됐는데 모두 주공이 패소했다. ⓒ KBS


소송을 분석한 결과 똑같은 사례로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한주택공사(주공)를 상대로 한 임대아파트분양원가 소송은 10건이 집계됐는데 모두 주공이 패소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공개청구 소송에서 매번 패소하는데도 비싼 수임만 들여서 시간만 끌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주공측에 묻자 “정보를 공개함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시간과 돈을 버리고 있는 정보공개법에 대한 문제 지적이 높아지자, 지난해 11월 정부 시민단체, 언론계가 논의 끝에 불필요한 소송을 줄이기 위해 정보공개위원회에 행정심판 기능을 부여하고, 악의적 비공개에 대해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는 새 정부 도입을 앞두고 3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새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이경숙)도 정보공개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비롯해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보공개법은 과연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정보공개법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지 주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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