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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희 MBC 라디오편성기획팀 PD

같이 일했던 작가 중에 ‘생선’이라는 인물이 있다. 물론 예명이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이 친구는 조직친화적인 유형이 아니다. 닭벼슬 머리에 귀걸이를 한 외모도 그렇지만 사람 대하는 방식이나 일 해가는 과정이 영 여의도 방식이 아니다. 살아 온 과정도 마찬가지여서, 이를테면 토익이 영어 시험인지 학원 이름인지는 몰라도 서바이벌 영어는 나보다 몇 배 나은, 그런 친구이다.

이 예측 불가능한 친구가 느닷없이 고물차를 몰고 아메리카 횡단을 하더니 얼마 전 여의도로 복귀했다. 좀 변했다. 뭔가 성숙한 표정이 되었고, 언행도 안정되었다. 개인의 삶과 조직의 논리를 일치시키려는 모습도 고무적이다. 그런데, 서운했다. 뭔가, 빼앗긴 듯, 서운했다.

방송국에 입사한지 만 십년이 넘어버렸다. 전혀 실감도 안 나고, 축적된 것 뭐 하나 없이 시간만 흐른 것 같아 유감스러울 따름이지만, 어쨌건 이십대 후반에 입사한 내가 삼십대 후반을 향해가는 건 틀림없다. 며칠 전에는 10년차 신입사원 후배도 두 명 들어왔다. 맙소사. 10년차라니.

아직 객(客)의 눈빛을 달고 뻣뻣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두 후배들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저 조심스러운 눈 속에, 선배들에게는 없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감추어 놓고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 무엇을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개성이나 가치관, 습성, 기호, 창의성, 이런 말들 언저리에 놓일 수 있을 게다. 이런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적어도 PD직에 도전한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 것 아닌가. (아니라면 당신, 잘못 들어왔다.)

그런데 내 짧은 경력을 돌아본 결론은, 그것, 그 ‘나만의 것’이 아주 쉽게 소멸되어 가더라는 것이다. 기획서에 목표시청률을 적어 넣으라는 시스템의 명령 속에서, 아이디어가 정치적 관계로 묵살되는 경험 속에서, 시니컬한 뒷담화 속에서, 각종 실물경제 정보와 혈연관계의 팽창 속에서, 수많은 관계와 상황을 거치며 의외로 그 ‘나 다움’은 쉽게 상실된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표준화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신입사원에게 목에 힘주어 교훈을 불어 줄 입장은 여러모로 못 된다. 하지만 그래도 발언권이 주어진다면 이 말은 하고 싶다. 나만의 것, 내 스타일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바지가 아니면 불편한가? 반바지 입으면 된다. 여자인데 담배를 핀다? 계속 즐기시라. 그 무엇이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맘대로 해라. 견제 받으면 좌충우돌하면 된다. 사실 이 말은 모방이다. 술만 먹으면 큰 소리로 ‘맘대로 해! 멋대로 해!’ 라고 말해 준 선배가 내게도 있었다. 선배와 조직이 이끄는 대로 성실히 산다면 웰 메이드 PD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방송을 휘둘러버릴 ‘물건’은 되지 못한다. 아마 그 선배도 날 보며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조직은 원래 개성을 누르려 들기 마련이다. 그건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조직이란 것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그러나 조직이 나를 삼켜 먹을 때 그 목구멍을 후벼 팔 날카로운 가시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역설적이게도, 그래야 조직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증거는 아주 많다. 부디, 오기를 부리건 아니면 요즘 세대다운 무심함으로 제압하건, 그 ‘나만의 것’을 오래 지켜나가길 기원한다. 당신들이 몸담은 곳은 방송사이고, 당신들은 이제 PD가 아닌가. 샐러리맨이 아닌 PD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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