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파업이 남긴 것...신작 프로그램 제작연기-취소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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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재방·리얼리티쇼로 작가료 절감 모색


지난 주로 미국 방송, 영화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작가노조의 파업이 끝났다. 노조원 전체 투표 결과 90%가 넘는 찬성률을 기록하면서 작가들은 다시 제작현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작가들은 가장 쟁점이 됐던 제작물의 인터넷 방영에 대해서 방송 첫해에는 일정액을, 그 후에는 배급 수익의 2%를 받기로 했다. 이 계약은 3년 후에 다시 갱신하기로 했다. 일단 불확실하지만 성장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인터넷 프로그램 시장을 두고, 일정정도 합의한 것은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협상 결과는 예전에 VHS(Video Home System. 가정용 비디오)에 대해서 2%를 받기로 한 것에 비하면 작가 쪽이 이긴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 NBC 드라마 <바이오닉 우먼> 사진제공=NBC.

하지만 프로듀서 쪽과 작가 쪽의 반응을 볼 때, 양쪽 모두 파업이 끝나서 좋다는 반응은 있어도 협상 타결에 대해 극히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미디어 재벌을 끼고 있는 프로듀서들은 4%가 여전히 많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들의 반응은 제작사뿐만 아니라 통합되어서 집중되어 있는 배급사들의 경영 형태를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당장에 제작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이후 재방이나 DVD, 인터넷을 통해 수익을 챙겨왔고, 인터넷이 미래의 유통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 수익을 작가들에게 내주게 되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게다가 곧 있을 배우조합과의 협상에서도 이번 결과가 선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의 여파로 방송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파업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또 파업으로 재방이 계속되어도 꾸준히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시청습관이 계속되고 있어서 초기에 걱정했던 시청자들의 다른 미디어로의 이탈은 크게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사 대상 가운데 72%의 시청자들이 프라임 타임대에 전과 다름없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는 점은 미국 방송계로서는 환영할 만한 결과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은 어떨까? 파업기간 중 46개의 드라마와 17개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이들 중에는 제작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정상화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작가들이 프로듀서와 일단 충돌을 한 것이라서 파업 전의 제작 분위기를 되가져오고, 이전의 아이템을 다시 조정하고 제작팀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신작 방영 예정일을 거의 3, 4월로 잡고 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시즌 제작편수가 줄어들어 거의 한자리수의 제작편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흥미롭다. 보통 한 시즌에 20편에서 25편 정도 제작되는 프로그램들은 처음 방송 이후 지역방송사나 외국 방송사에 통째로 팔리고, DVD로 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파업으로 인해 고작 10편 내외의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이런 시장의 관행에 혼란이 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예 시즌 자체를 취소한 프로그램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4>라는 프로그램이다. 폭스 측에서는 9편부터 <24>를 방송하려고 예정했다가 모든 에피소드를 중단 없이 방송하고 싶다는 이유로 완전히 취소해버렸다.

▲ 폭스 TV 드라마 <24> 사진제공=폭스.

<24>의 경우에는 다음 시즌에 다시 돌아오지만, 이번 파업을 계기로 완전히 종방되어버린 프로그램도 많다. 대부분이 올 시즌 처음 시작된 프로그램들로서 NBC의 <바이오닉 우먼(Bionic Woman)>(소머즈 후편) 등이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 워낙 처음부터 시청률이 낮아서 파업이 종방시킬 좋은 계기를 준 것이다.

이렇게 중단되고 취소되는 프로그램들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심야 토크쇼들이 파업이 타결되기 전인 1월 초에 방송을 시작해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작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제작을 하다보니 오히려 더 엉성한 프로그램을 내놓아 시청자들의 많은 불평을 샀다. 특히 진보적인 내용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코미디 센트럴의 <존 스튜어트의 데일리 쇼(Daily Show with Jon Stewart)>는 작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시작하고는 초반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작가들을 비웃는 내용을 다뤄 많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제작자들의 경우에는 방송사와 시즌 당 제작 편수의 계약을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방송을 시작했을 수도 있지만, <데이빗 레터맨쇼>의 경우에는 작가노조와 별도의 계약을 하고 방송을 시작하기도 해 존 스튜어트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사연이 많은 파업이 끝났지만, 이번 파업이 성공인지에 대해선 생각해 볼 바가 많다. 당장에 작가들이 인터넷 미디어 시장에서 수익을 보장 받은 것은 작가들에게는 이익일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텔레비전 시장과 신작 프로그램의 약화가 이번 파업으로 나타난 두드러진 결과물이다.

일단 재방송과 신작물을 비교했을 때 시청률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시청자들이 신작에 만족하는 만큼이나 재방물을 즐긴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방송사로 보아서는 딱히 많은 돈을 들여서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할 필요가 작아진다. 적당한 수준에서 재방과 신작을 섞어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업기간 중에 많이 방송을 했던 리얼리티쇼도 시청률 면에서 그리 큰 손실이 없었던 것을 본다면 작가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가능성도 크다. 작가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아낄 수 있고, 제작비도 싼, 그렇지만 시청률에는 큰 차이가 없는 리얼리티쇼가 방송사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일부에서 <24> 취소를 두고 폭스사가 <아메리칸 아이돌>로 그 시간대를 싸게 메우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런 예상들은 방송사의 당장의 경영수익 입장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장기적인 텔레비전의 몰락을 낳을 것이라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일단 재방, 삼방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가 문제이고, 그냥 켜놓고 있는 텔레비전에 대해 언제까지나 광고주들이 돈을 지불할 것인가가 또 다른 문제이다. 당장의 경영지수를 가지고 결정하는 프로그램들이 장기적으로는 텔레비전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번 작가파업이 그 촉매가 되는 것은 아닌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no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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