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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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단상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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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15일간에 걸친 방송노조의 파업이 끝났다. ‘노정간의 합의를 쟁취한 역사적 연대파업’이라는 자평 그리고 ‘파업의 의미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실패한 파업’이라는 일부 조합원의 비통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방송현업인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유보해 두었던 현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어느 파업 치고 어렵지 않은 싸움이 없었고, 또 그 성과를 두고 논란이 없었던 적이 없다고 본다면 파업 이후에 벌어지는 풍경도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번 파업이 방송독립 투쟁 10년을 결산하는 파업이라는 구호를 잠깐이라도 곱씹어보면 파업 결과물 즉 노정 합의문을 놓고 이루어지는 내부의 갈등과 후유증은 예사롭지 않다. 다 잘해보자고 하는 일이고 내부의 민주적 논의구조를 위해서라도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겠으나 현업인들의 실망과 분노는 생각했던 이상이다. 비판론자들에 따르면 전략 부재의 상황에서 봉합한 섣부른 결말이며 지난 10여년의 고난에 찬 농사를 다 허사로 돌렸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은 파업 투쟁의 전진(戰塵)이 사라지지도 않은 터에 책임소재를 따질 때는 아닌 것 같다. 노정 협상이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8월의 임시국회에서 어찌될지 모른다. 방송개혁의 여망을 배신한 국민회의가 과연 이 정도의 약속이라도 성의있게 지킬지, 혹은 논의과정에서 소외된 자민련이 딴지를 걸지는 않을지, 아니면 반사이익을 노리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한나라당이 그 본색을 어떻게 보일지 나아가 문광부나 청와대 등에서 난데없이 마각을 드러내지는 않을지 미지수인 것이다. 게다가 구시대적인 착각에 사로잡혔는지 불법파업이니 불법파업의 주체와 합의를 했느니 하며 난데없는 ‘억지’를 쓰는 방송협회의 발호마저 있어 사태를 어지럽게 하는 데에 한몫하고 있다.여하튼 방송개혁 입법의 대장정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방송법은 이제 시작이다. 방노련과 여당이 합의한 것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일 뿐이다. 현업단체들은 전열을 추스르고 원인을 분석해 곧바로 2차 공격에 나서 전과확대를 이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내부의 연대를 재삼 다져야 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역할 분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미 발족한 공대위와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난 파업에서의 실착으로 지적되는 시민단체와의 공조에 차질이 없도록 겸손과 성실을 다해야 한다.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이번 7월 파업에서 방송노조는 시민단체의 냉담과 몰이해로 말미암아 큰 고통을 치렀다. 이번 방송법 개혁 투쟁이 어떻게 결말을 맺든 이 부분은 우리 방송인들이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일이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방송인들은 무수한 파업을 결행하면서 방송독립과 방송개혁을 위해 투쟁해왔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지금까지의 투쟁이 적당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약속대련’이거나 더 심하게 말하면 분식(粉飾)용의 치장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아왔음을 적나라하게 확인하게 됐다. 특히 방개위 탈퇴 이후 각 방송사 노조는 kbs 예결산권이나 mbc 민영화나 공적 기여금 등 자사 문제에 매몰됨으로써 방송노조가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세간의 인식을 강화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파업 초기에 일부 시민단체들로부터 파업의 명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느니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느니 하는 시비가 나왔던 것은 참으로 야속한 일이나 저간의 사정을 겸허하게 짚어보면 상당 부분 방송현업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많다. 이 대목은 향후 노조와 시민단체의 미래지향적 자리매김을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또하나 음미할 것은 우리의 파업투쟁이 일부에게 매우 상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파업 때의 치열한 구호와 파업이 끝난 후의 방송 프로그램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발견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정치적인 도구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 보도, 시청률지상주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제작 프로그램 등은 아무리 그것이 왜곡된 방송구조의 탓이라고는 해도 방송개혁한답시고 파업까지 거행하는 방송인의 소산물로 보기에는 너무도 아쉬움이 크다는 말이다. 평소에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실천을 못하면서(안하면서) 파업이라는 ‘대동굿’때 그저 푸닥거리나 하는 것이라면 어찌 방송인들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힐난엔 유규무언이 될 수밖에 없다.파업이 끝난 뒤의 텅빈 광장과 ‘민주의 터’를 보면서 이런저런 소회들이 떠오른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엔 바쁜 일상이 이 나마의 반성과 회고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위하지 않을까.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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