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EBS <알고 싶은 성 아름다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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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 EBS <알고 싶은 성 아름다운 성>
청소년 성교육 프로그램, 어른 잣대로 재단 말아야김경은EBS 교육제작국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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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 1. 결심했다, 잘 해 보기로…“그거 재밌겠다, 드디어 교육방송에서도 포르노(?)를 볼 수 있겠군.”, “공중파 최초로 정규 편성되는 청소년 성교육 프로그램이에요, 잘해봅시다!”, “힘들겠다, 잘해도 본전인데, 누구나 입 달렸다고 한마디씩 할 거 아냐.”진짜 누구나 한마디씩 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성(性)! 점잖은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이제 청소년들이 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건가? 그것도 공중파에서, 특집이 아닌 정규편성으로? 근데 놀랍게도 사실이었다.매주 토요일 저녁 7시 5분에서 7시 30분까지 <알고 싶은 성 아름다운 성>.‘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며 결심했다. 한번 잘 해보기로.
|contsmark1| 2.아이들의 성(性), 그 한가운데서…아이들을 만나야 했다. 그들과 나 사이의 15여 년의 시간들을 걷어내야 했다.아이들을 찾아서, 현장전문가들을 찾아서.“스킨십은 당연한 것 아니에요?”, “섹스요? 좋아하면 할 수도 있는 거죠.”, “성교육이요? 뻔할 뻔자죠. 애쓰지 마세요. 애들은 안 봐요.”우와, 정말 애쓰는 걸 포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너무 앞서 나가고 있었다. 말이 없는 점잖은 어른들 대신 아이들은 인터넷 사이트, 포르노, 만화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배워가고 있었다. 여성관(女性觀)을 세우고, 남성관(男性觀)을 세우고, 결혼관(結婚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너희들이 아는 세계는 거짓이다?’, ‘의식과 행동은 자유로울 수 있어도, 그 뒤에 오는 상처와 아픔은 온전히 너희 몫이다?’, ‘말초적인 감각이 아닌, 서로를 알아 가는 기쁨이 있고,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는 배려가 있는 그런 세계가 있지 않을까?’항상 들어왔던 말들, 그래서 너무 익숙해져버린 말들! 하지만 전해져야 될 말들이었다. 문제는 감각에 치우쳐 있는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인가!’였다. 어떻게 전할 것인가!
|contsmark2| 3. <알성아성>의 출발점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자. 그들이 생각하고, 또 알고 있는 것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보자. 이야기하다보면 문제점들도 저절로 드러나겠고, 아이들 스스로 결론도 내릴 수 있겠지.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진짜로 사랑하면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임질 수 있으면….-책임? 너희들이 생각하는 책임은 뭐지?-여자아이들이 거부하는 것, 내숭 아니에요?-정말 그럴까? 정말 싫어서 싫다고 하는 것 아닐까?-맞아요. 우리 여자들, 싫으니까 싫다고 하죠!아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성관, 여성관, 사랑관…. 그들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같이 생각했다. 남과 여, 서로의 차이점도 알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함도 알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주기는 하지만 결론이 너무 교과서식이진 않은가? “행여나 했는데 결국은 또 그 소리야?”하며 아이들이 귀를 막지는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맞다, 사례 인터뷰!똑같은 이야기도 경험해 본 또래의 입을 통하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낙태 후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울먹이던 아이, 한번의 성관계 후 인생을 다 산 것 같노라고 고백하던 아이, 한 번의 가출로 윤락가까지 이르게 된 아이….어렵게 사례 인터뷰 할 아이들을 찾았고, 고맙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래, 제대로만 알려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 믿음 위에서 <알성아성>은 시작됐다.
|contsmark3| 4. ‘어떻게 아이들 입에서…’“이거 방송 나가도 돼나?”, “어머, 아이들이 진짜로 이렇게 생각해?”, “이거 괜찮겠어?”기획단계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우려의 목소리들….“왜 안돼요? 이게 현실인데요!”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첫 제작 후, 방송사 내 합동시사회에서의 수정명령, 재녹화, 수정 후 방송, 방송위원회 출석, 연출자 경고 및 프로그램 경고, 두 번째 편의 불방…. 무수히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교육방송마저 이런 방송을 만들다니….”, “듣기 민망한 얘들 이야기를 꼭 넣어야하나요?”, “여긴 상담실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이에요.”분명히 ‘청소년 대상 성교육프로그램’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배우라고, 고민하고 애써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로그램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다 어른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이 청소년들 입에서….’ 그거였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섹스, 성 이야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벽은 높았다. 매 녹화 후 계속되는 프로그램 시사와 반복되는 수정, 또 수정!아, 아직은 이르구나. 아직까지 청소년이 이야기하는 성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구나. 성(性)은 결국 어른들의 것이구나! 그렇게 6개월이 갔다.
|contsmark4| 5. 끝에 서서…“진짜 시원하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잘됐네, 그동안 힘들었잖아요”, “그래도 섭섭하겠어요, 고생 많이 했는데….”9월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옮겨가는데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글쎄, 시원한가? 힘? 그래, 힘들긴 했지! 좀 섭섭한 것 같기도 하고….<알성아성>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차츰 차츰 빠지면서, 덩달아 힘이 빠져버린 탓인가? 이것저것 느낄 힘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러 저러한 상황을 핑계로, 해줘야 할 말을 제대로 못해 준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며, 그 미안함을 다음 연출진이 깨끗이 씻어주길 바랄 뿐이다.|contsmar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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