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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에 어린 할아버지의 모습주호성 연극인

|contsmark0|내가 어려서 자라던 동리 초입 이장댁 바깥마당엔 커다란 살구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었다. 내게는 먼 친척이 되었던 그 집의 바깥마당은 그 동리를 출입하는 길가여서 온 동리 사람들이 오며가며 그 살구나무 아래를 늘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다.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에도, 장대비에 노래지기 시작하는 풋과일들이 떨어지던 한여름에도, 물렁하게 잘 익은 살구가 군침 넘어오게 하는 끝 여름에도, 썰렁한 나목으로 서있는 눈 덮인 겨울에도 살구나무는 아름드리 모습으로 그렇게 거기 서있었다.이장 댁엔 호랑이 할아버지가 계셨더랬다. 이장 아저씨의 아버지였는데 동리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년들이며 어른들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할아버지였다. 전쟁 때 허벅지에 총을 맞으셨다던가…. 하여간 잘름잘름 다리를 저는 무서운 영감이었다.얼마나 무서웠는지 좌우간 할아버지 앞에선 숨도 쉴 수가 없었다. 동리 아이들은 그 할아버지가 보이면 저만치서부터 피해 도망가기 일수였고, 할아버지가 마당이라도 쓸고 있으면 고목에 살구가 먹음직스레 익어 저절로 떨어져 있어도 침만 삼킬 뿐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살금살금 지나가야 했다.친척집이라 해도 나 혼자 그 집에 가기가 두려운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때문이었다.살구가 잘 익어 온 마당 가득 살구 향이 풍기는 때였다. 외할머니 손을 잡고 그 집엘 갔는데 할아버지가 출타 중이었다. 그 집에서 한나절을 놀도록 외할머니는 안방에서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출입이 없었다. 그러자 나는 동리에 나가 아이들에게 호랑이 할아버지가 집에 없는 것을 알렸고 아이들은 고목에 기어올라 지게 작대기로 살구를 떨어냈다.한입 베어 물면 누우런 살구 살 사이로 발라져 나오는 살구씨를 뱉으며 그 달디단 과실을 혓바닥에 굴리는 맛이란….외할머니가 안방에서 불러대는 소리에 안마당에 뛰어들던 나는 기암 할 듯 놀랐다. 뒤꼍 싸리 울타리 허물어진 곳으로 호랑이 할아버지가 넘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집 며느리가 뾰족한 소리를 질러댔다.“아이고 아벗님 우티기 그리루 들어오신대유?”며느리를 본체만체 외양간으로 다가서며 연장들을 챙기던 호랑이 할아버지가 볼멘 소리로 중얼거렸다.“아 동네 어구서 보니께, 애덜이 살구낭구에 달렸잖어…. 놀래서 떨어지믄 우티겨? 거 아범은 뭐하구 있는겨? 과실이 익었으믄 털어서 농가 주잖구?”콩닥콩닥한 가슴으로 외할머니 손을 꼬옥 잡고 그 호랑이 할아버지 집을 나서며 어쩐지 할아버지 얼굴이 자꾸만 쳐다봐졌었다.허옇게 늙으신 그때 이장 아저씨가 호랑이 할아버지 모습을 고대로 닮은 채 살고 계신 그 집엔 지금 고목 살구나무도 없어지고 할아버지도 살아 계시지 않다.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그 할아버지가 닮고는 싶은데…. 욕심만 있지 잘 되질 않는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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