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현장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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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현장비평이다
‘친근한 역사’ 성공 … 주관적 시각 배제 노력 필요 ‘훈요십조’ 편을 중심으로
  • 승인 199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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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tv 프로그램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위 ‘역사"라는 소재는 다루기 까다로운 아이템이다. 특히 오래된 역사일수록 자료의 빈곤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를 제외하곤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적인 관점에서 매우 난처하다. 더군다나 학문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하는 프로듀서의 입장에선 방송 후에 받을 반대 세력의 거센 반발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품이 많이 들고 말도 많은 역사프로그램 제작에서 그나마 제작자들에게 하나의 면죄부를 제공해 주는 것이 있다면 ‘단순한 과거사 정리"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mbc <한국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kbs <대하다큐멘터리 - 해방>은 지난 100년간 있었던 일을 주제별로 엮어 정리하는 형식으로 특정 주장, 이념 대신 삶의 다양한 자취를 통해 격동과 급변의 지난 한 세기를 회고한다.이러한 방송현실을 감안할 때 kbs의 <역사스페셜>은 매우 고무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버츄얼 스튜디오(virtual studio)와 최첨단 그래픽 기술의 활용이라든가 역사를 보는 확신에 찬 시각, 재연을 통한 당시상황 재현 등은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보여주는 역사", ‘재미있는 역사"를 표방하면서 우리 역사에서의 사건, 사실에 숨은 의문을 밝힘으로써 더 나아가 시청자들의 역사를 보는 안목을 넓히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특히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의 투영은 소위 ‘역사"라는 진부한 소재도 방송용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은 <역사의 라이벌>, <역사추리>, , 등 여러 가지 형식실험을 거쳐 축적된 노하우를 선보이고 있다. 첫 프로그램 ‘영상 복원 - 무용총 고구려가 살아난다"부터 조선시대 역사 위주로 방송되던 그간의 역사 프로그램의 틀을 깨고 ‘추리"형식을 과감히 도입하여, 그 영역을 고대사까지 넓혀 놓고 있다. 최근 방송된 ‘화랑세기"와 ‘훈요십조"도 각각 신라와 고려 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14일 방송된 <역사스페셜>의 ‘왕건의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편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역사는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역사"를 다룰 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역사를 다루는 제작자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fact)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전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료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지 않은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역사 다큐멘터리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제작자의 시각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물론 시대가 바뀜에 따라 역사의 해석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점은 인정되나 그 시대가 보장하는 객관성이 결여된 프로그램은 한계를 가진다고 하겠다. 소재면에서 볼 때 새로운 의견의 제안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지만, 완벽하게 인증되지 않은 하나의 학설을 마치 타당하게 받아져야할 당연한 사실인양 몰아붙인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일단 부제는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였으나,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다"는 방향으로 이끌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보다 검증된 아이템을 소재로 택한다거나 다양한 시각을 좀더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보다는, 제작진의 주관적인 가치관이 다분히 개입된 듯한 몰아붙이기식 제작의 인상이 강하다. 지역감정 구도를 드러낸 훈요십조의 탄생이 고려 왕조 초반의 양대 세력으로서의 신라와 후백제 세력의 대립과 암투에서 비롯된 듯한 추리는 현재의 지역감정 구도에 맞춰 예정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짜맞추기식 구성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역사프로그램은 언제 방송될 것인가도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훈요십조의 경우 지역차별성을 다루고 있는데 호남출신의 지도자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굳이 이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할 이유가 있었나 하는 점이다. 사실 지역감정은 우리시대뿐만 아니라 새천년에도 우리가 풀어야할 중대한 숙제이긴 하지만 담당 연출자의 출신 지역을 질문받을 정도(담당 pd는 부산 출신)로 뻔한 기획의도 자체가 이미 프로그램에 흠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방송이 학계의 논쟁이나 연구를 선도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여 이를 뒷받침하고 더 많은 학계의 분발을 촉구할 것인가의 문제를 또 다른 숙제로 남겨 주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방송 프로그램은 이 시대를 읽어 가는 도구이며 하물며 역사 다큐멘터리는 과거의 역사와 미래를 조망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의 영향력이 늘어가면서 방송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기구 중의 하나로서 이를 통해서 방송되는 내용은 국정교과서 내지는 검인정 교과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일부 학교 현장에서는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부교재로 사용한다고 한다.어떤 면에서는 방송에서의 문제제기가 곧 학계로 번지는 파급 효과의 완전한 고리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프로그램화가 조금은 늦더라도 오히려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화랑세기 필사본 진위 논쟁"처럼 이미 학계에서의 서로 다른 주장들을 다룬 프로그램에 비해 ‘훈요 십조"의 조작에 관한 프로그램은 성급한 면이 보인다. <역사스페셜>은 역사의 대중화를 말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깝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끌어들이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스페셜>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본다. 다만 마땅한 검증 자료가 빈약한 우리의 고대사 영역의 한계가 방송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는 좋은 꺼리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제작자들은 수시로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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