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언론인 1000여명 참석…국내 언론인간의 경험 공유 중요성 깨달아
최승호 MBC ‘W’ CP가 6월 6일~16일 미국에서 열린 IRE총회 참가 후기를 보내왔다. IRE(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 미국 탐사기자,편집인협회)는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와 편집자들의 모임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번 총회 기간에는 1000여명의 언론인들이 참여했다. <편집자>
나는 지난 몇 달간 언론재단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탐사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이다. 처음 신청했을 때는 주변에서도, 언론재단에서도 좀 놀라는 분위기였다. 다 늙은 처지에 강사라면 몰라도 피교육자라니? 그러나 솔직히 20년 PD 생활을 했지만 한 번도 취재기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해본 적은 없다. 그저 감각으로 장애물을 돌파해 나왔을 뿐. 돌아보면 다들 비슷하지 않은가? 다큐멘터리건 고발 프로그램이건 PD 사회에서는 아직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듯하다. 그런 면에서 언론재단의 ‘탐사보도 디플로마’과정은 심층고발 프로그램 PD라면 한 번쯤 들어볼 만한 과정이었다. 게다가 이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미국 연수다.
▲ IRE 총회 한 장면 |
한국 언론인 40여명 총회 참석
6월 6일부터 16일까지 나는 < W >프로그램 기획자 역할을 후배에게 맡기고 연수단의 최고 늙다리로 끼어 미국을 다녀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IRE총회 참가였다. IRE(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 미국 탐사기자,편집인협회)는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와 편집자 즉 데스크들의 모임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창설 이후 국제적으로 탐사보도를 하는 PD나 기자들을 교육시키는 역할을 해왔고 이제는 전 세계적인 조직이 되어 있다. 이번 총회 기간 중 모인 미국 언론인들이 800명인데 해외의 언론인도 무려 200명이나 참여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간 40명 정도의 언론인도 있다. 회사의 공식 주관으로 온 경우는 KBS가 유일했고 나머지는 언론재단 연수의 일환으로 오거나 자비로 온 경우도 몇 명 있었다.
IRE총회는 탐사보도를 하는 언론인들이 모여 주제별로 중요한 보도를 한 이들의 취재경험을 듣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쟁범죄, 다국적기업, 산업현장의 안전문제, 범죄자 교정 행정의 문제, 경찰 문제 등 많은 주제를 어떻게 탐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뤄졌다.
또 다른 중요 부분은 컴퓨터활용취재(CAR, computer assisted reporting)에 대한 교육과 실제 활용 사례 소개다. 아예 2개 강의실에 컴퓨터를 설치해 컴퓨터 활용방식을 교육하고 성공적인 취재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총회 기간 중 첫날 6개 강의실에서 30개 강의가 있었는데 이 중 20개가 CAR와 관련된 것이었으니 나는 이제껏 고수해온 “책상머리 취재보다는 발품취재가 최고”라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 언론사, 자료조사 및 관리에 공들여
▲IRE 총회를 알리는 안내표지판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많은 언론사들이 자료조사 및 관리를 위한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수팀이 IRE총회 후 방문한 뉴욕타임스의 경우 9명으로 구성된 CAR팀이 있는데 이들은 편집국의 기자들을 도와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컴퓨터 활용보도도 하고 있었다.
BBC의 조사 전문가 폴 마이어스도 총회에 와서 ‘인터넷 정보 검색’을 강의했는데 그의 주요 임무는 PD나 기자의 의뢰를 받아 정보를 검색하고 BBC 내 취재 인력에게 정보검색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방송의 경우 리서처라는 이름으로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막상 그들이 수행하는 일은 PD의 지시를 받아 일상적인 섭외를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인력 활용방법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러나 막상 방송분야에서는 적지 않게 실망하기도 했다. IRE총회에서는 방송분야를 따로 떼어 강좌를 여러 개 개설했는데 이 자리에서 제시된 탐사보도의 수준은 여타 분야에 비해 충분치 않았다. 컴퓨터 활용보도도 그다지 없었고 지엽적, 지역적 한계를 벗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 방송 탐사저널리즘, 신문에 크게 뒤져
방송 부문에서 IRE최고상을 탄 NBC 데이트라인의 ‘Bitter pills'(중국산 가짜 약이 미국까지 들어와 유통되는 과정을 탐사) 정도가 그나마 볼 만했는데 이 경우도 7-8분 짜리 3부작으로 한국의 개념으로 보면 소품이었다.
CBS의 60minutes나 NBC의 Dateline같은 독자적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꼭지 당 길이가 7분에서 12분 정도이고 나머지 대부분 로컬 방송사들은 30분 정도의 메인 뉴스 안에 심층 보도 형태의 3-4분 꼭지를 탐사물로 편성하는 데 그치고 있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3-4분 안에 어떻게 주제를 전달하고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이 총회에서 주요 관심사로 논의됐다. 특히 통계적 숫자를 짧은 시간 내에 시청자 머릿 속에 쏙쏙 들어가게 하기 위해 리포터 뒤의 벽에다 숫자를 페인트로 쓰거나 지나가는 버스에 수퍼 임포우즈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쓰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쉽게 보도하는 방식을 참고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신문저널리즘의 폭과 깊이에 한 참 밀려난 미국 방송처럼 되면 안 되겠다는 저항감도 들었다.
PD연합회, 프로그램 제작 공유의 장 마련하길
총회에서 나는 이민규 중앙대 교수가 주재한 ‘한국의 탐사보도’ 시간에 KBS 최경영기자, 부산일보 이병철기자와 함께 황우석 보도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서 방송 분야의 ‘show & tell'시간에 미국 방송인들을 상대로 다시 한 번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발표이후 여러 언론인이 내게 찾아와서 보도과정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 싶어 했고 자신의 회사 간부들과 함께 보겠다며 프로그램을 얻을 수 없겠냐며 묻기도 했다.
CBS의 한 지방사 간부는 자신은 앞으로도 그런 보도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조 섞인 칭찬을 하기도 했다. 칭찬은 고마웠지만 한국에서 지금 불어 닥치고 있는 교양 탐사보도 프로그램 일반에 대한 시청율의 압박에 굴복하면 결국 지엽적인 관심사에 종사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겠다는 두려움도 커지고 있었다.
이번 연수 과정을 통해 든 생각은 IRE총회와 같은 국제적 행사에 참석해 큰 흐름을 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의 언론인들이 국내에서 만나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이미 탐사언론인회가 만들어졌으니만큼 더 많은 PD들이 참여해 기자들과 의견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과 PD연합회 같은 조직이 IRE총회처럼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프로그램에 대한 PD들의 경험을 나눌 장을 조직해보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각 방송사가 이러한 PD, 기자들의 자발성을 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