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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지만 차근차근 진행돼온 KBS의 수신료 인상 추진 작업이 또 한번 숨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KBS 이사회는 6월 27일 정기이사회를 열어 수신료 인상안을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7월 9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다시 심의하기로 했지요.

 

 

 

 

 

          ▲이희용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KBS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대부분 공감하고 원칙적으로 수신료 인상에 의견을 같이 했으나 국민에게 더 알릴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이사회를 지켜본 사람의 전언에 따르면 수신료 인상안 자체를 유보하거나 부결시키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공영방송의 가치와 수신료의 의미, 디지털 전환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수신료 인상 필요성 등에는 대부분 이사진이 공감을 표시해 인상안이 철회되거나 인상액이 바뀔 가능성은 적다는 거지요.

그런데 왜 결정을 미뤘을까요. 25일 공청회를 열자마자 27일 곧바로 승인안을 의결하면 공청회가 요식행위였던 것처럼 비칠까봐 그랬을까요. KBS 이사회가 국민 부담을 늘리는 수신료 인상안을 놓고 깊이 있게 고민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였을까요.

그랬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은 모양을 갖추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 모양이라는 것은 단순히 의결 시기를 늦추거나 숫자로 밀어붙이는 표결 방식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의결 방식을 말하지요. 

이날 이사회에서는 4시간여에 걸쳐 격론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여러 의견 가운데는 연기론도 있었지요. 일부 이사는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인상 시기를 미룰 것을 제안했답니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하더라도 방송위원회 검토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현재 정치권이 대통령선거에 몰입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거지요. 

이 제안은 다수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는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이 너무나 급박하다는 주장과 또 미루다 보면 그때 가서도 다른 이유로 미뤄질지 모른다는 우려에 묻힌 겁니다. 

공정방송 실천과 경영 혁신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계기로 약속한 10가지 가운데서도 이 대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요. 8번 항목(가장 공정하고 신뢰받는 KBS가 되겠습니다)에서 KBS가 가장 신뢰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KBS 보도 및 제작 가이드라인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공정성 및 신뢰도 제고'하겠다고 적었지요. 경영 혁신에 관해서도 KBS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경영 혁신을 해왔다는 내용만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 빠져 있습니다. 

공정방송과 경영 혁신에 대한 보완을 요구한 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가장 주요한 이유로 들고 있기 때문에 이 대목에 대한 설명과 약속이 필요하다는 취지인 듯합니다.  

물론 표결로 가면 인상안이 통과될 듯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이사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수신료 인상 문제에 쏠린 국민의 미묘한 시선을 감안했기 때문이겠지요. 이사회는 12일 뒤 재심의를 하기로 하고 일부 불비한 보충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KBS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27일 갖춰지지 못한 모양이 9일 임시 이사회에서 갖춰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방송위원의 추천을 받아 임명됐다 하더라도 일단 KBS 이사가 된 이상 수신료 인상안 자체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겁니다. 반면 한나라당과 대다수 신문들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상안에 합의해주는 것도 마음에 걸릴 겁니다. 사장 선임 때와 달리 곤혹스러운 처지가 짐작되지요. 

KBS 이사회는 구성원 분포로 보나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KBS의 독립성과 공공성 보장)로 보나 인상안 자체를 통과시켜야 할 당위성이 있는 듯 보입니다. 또 이를 위해 KBS는 이미 연초부터 오랜 시간 이사회와 협의를 해왔지요.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인상안이 KBS 이사회를 통과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방송위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인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 몇 가지 검토 의견이 달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본격적인 논란은 국회통과를 앞두고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지요. 그런데 만일 KBS 이사회가 일부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표결로 인상안을 통과시켰다면 이후 공방에서도 큰 부담을 안게 될 겁니다.

수신료 인상 문제 따져보는 토론회 나란히 개최 

이사회가 열리는 9일 오후에는 수신료 인상 문제를 놓고 두 건의 토론회가 나란히 열립니다.

한국방송학회가 이날 오후 2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개최하는 '격변하는 매체환경 속의 공영방송 정체성과 재원구조 정상화'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는 강형철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교수와 정윤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각각 '융합미디어 환경에서의 공영방송 정체성 확립을 위한 역할 모색 및 대응'과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재원구조 마련을 위한 정책방안과 전략'을 주제로 발표에 나섭니다.

토론자로는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임동욱 광주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상요 KBS 정책기획센터 기획팀장, 김승수 전북대 언론심리학부 교수, 양문석 언론연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랍니다. 

문화연대도 같은 시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KBS 수신료 인상의 사회적 평가-KBS 수신료 인상안과 그 대안을 중심으로'란 주제의 제1회 미디어문화정책테이블을 개최합니다.

방송학회 세미나가 매체환경 변화 속에서 공영방송의 위상과 역할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재원구조를 논의하는 자리라면, 문화연대는 KBS가 내놓은 수신료 인상안과 사회적 약속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따져보는 시간을 마련한다고 하네요.  

문화연대는 "KBS 주도의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으며 수신료 문제는 시민적ㆍ사회적 토론과 논의가 없이 해결될 수 없다"면서 "KBS가 제출한 수신료 인상안과 그에 포함돼 있는 사회적 약속을 평가하고 KBS의 공공성을 확대할 수 있는 수신료 인상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토론회 기획 취지를 밝혔습니다.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이 '수신료 문제의 사회공공적 판단'을 주제로 발표하며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본부소장, 권호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김광범 EBS 정책위원, 김환균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 서정은 미디어오늘 방송팀장 등이 토론에 참여합니다.

송출공사 재론, 2TV 분리 및 EBS 통합론 등 무성 

KBS 수신료 인상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다보니 차제에 공영방송의 위상과 역할을 재점검하며 현재의 공-민영 방송구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로 옮아가려는 시도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5월 16일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토론회에서 "KBS는 수신료 기반방송과 광고기반 방송으로 분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며 이러한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현재는 수신료 인상을 고려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이어 "공영방송이 그 목적에 부합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면 민영화하는 것이 적절하며 현재 방송 편성으로 보면 상당한 비중이 민영화 대상"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6월 26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마무리 시점이 있는 한시적인 시책인 반면 수신료 인상과 광고제도 개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하하거나 제도를 되돌릴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에 수신료 인상이나 광고제도 개선보다는 (가칭)한국방송기술(지원)공사를 설립,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KBS에서 편성ㆍ제작ㆍ보도 등 방송의 독립성이나 공정성과 직접 관련이 없는 방송기술 개발이나 시설 투자, 송신소 관리 등을 별도의 공사로 분리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되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지역방송과 민영방송을 포함한 전 방송사의 디지털 전환과 방송장비 현대화, 국가기간방송망 관리, 난시청 해소, 방송기술 R&D 투자 등을 공사에 맡기자는 안이지요. 

이 의원은 또한 공영방송사를 KBS와 한국방송기술공사로 근본적으로 개편하고, EBS를 KBS와 합치는 구조개편안도 내놓았습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나 한나라당과는 다소 색깔이 달라 보이는 이효성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장)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6월 27일자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시론에서 수신료 적정 수준의 인상 필요성을 거듭 역설한 뒤 이를 위해 공영방송들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며 실제 변신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문했지요. 글 말미에는 "궁극적으로는 KBS와 EBS를 통합하는 대신 KBS2를 떼어내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일단 2TV 분리와 EBS 통합 문제는 5월 말 이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으니 덮어두기로 하지요. 보수, 우익, 신자유주의 쪽에서만 나오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만 새롭게 기억해두기로 합시다. 

기술공사 문제는 조금 복잡합니다. 이재웅 의원이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5공화국 군사독재정권의 망령을 되살리는 주장"이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냈지요. 80년 송신업무가 KTA(현 한국통신)로 이관됐다가 독립성 훼손과 비효율성 등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해 3년 만에 환원됐다는 '역사적 근거'를 드는 한편 제작과 송신을 분리하면 방송사는 일개 PP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현재 모든 송신시설이 자동화돼 제작과 송신업무가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중복비용 부담을 줄여 투자 효율성을 높이고, 방송사의 구조조정 작업에도 보탬이 되는 측면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90년대 이후로도 몇 차례 송출공사 설립 논의가 제기됐다가 방송사의 기술직 종사자들의 반발과 현실적 어려움 등에 떼밀려 무산됐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지요. 

비단 기술직 사원이 아니더라도 KBS로서는 지금 대목에서 이런 논의가 불거지는 게 반가울 리 없습니다. 수신료 인상을 계기로 차제에 공영방송을 포함한 전체 방송시장 구도의 재편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 자체를 가로막을 순 없지만, 논의가 흘러가다 보면 자칫 수신료 인상 시기를 미루자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지요.

 3기 방송위 출범 1년을 맞는 착잡한 심경

7월 14일이면 제3기 방송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지 꼬박 1년이 됩니다. 그 안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지요. 위원장과 상임위원도 바뀌었고 한미 FTA 협상도 타결됐으며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이 국회에 올라가 있습니다. 2기의 유산인 경인TV 허가추천 문제를 놓고 안팎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강동순 상임위원의 녹취록이 불거져 홍역을 치르기도 했지요.

304개 단체로 구성된 '강동순 방송위원 사퇴를 위한 방송현업ㆍ시민사회ㆍ미디어운동 공동대책위원회'는 3기 방송위 출범 1년을 앞두고 6월 29일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현재의 방송위원들은 독립성, 전문성, 투명성 확보에 문제가 있고 임명된 후에도 책임을 지는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면서 선임 방식을 개선하고 책임 제도를 강화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날 참석한 토론자들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강동순 상임위원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방송위 구성방식과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냈지요. 강 위원을 포함한 방송위원 물갈이 투쟁의 필요성도 거론됐다고 하네요. 

7월 2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방송인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방송위원회 3기 평가 및 향후 과제'의 토론회에서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 제기와 적나라한 폭로가 이어졌지요.

김진웅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각계의 시민사회 대표로 구성된 기구를 신설해 방송위를 규제 감독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이원적 모델을 도입하는 한편 방송위원 평가가 선임과정에서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일상적으로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검토와 함께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효선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강동순 녹취록 파문 ▲위원장의 권위주의적 태도 ▲한미 FTA 대응 ▲인사 운영의 난맥상 ▲케이블TV SO 횡포 방치 ▲우리홈쇼핑 최대 출자자 변경 승인 등의 사례를 조목조목 짚으며 1년 동안의 활동상을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토론자들의 발언도 비판론 일색이었습니다. 이남표 민언련 정책위원은 "방송위가 정부 부처로 통합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방송위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이 크게 하락했다"고 꼬집었고, 양문석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방송위는 위기 임계점에 이르러 방송위를 개조할 것인가 해체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됐다"고 토로했지요.

방송위 3기 1년을 맞는 감회가 착잡하고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까지 방송위가 보인 태도로 미뤄볼 때 앞으로 남은 2년을 기대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IPTV나 방송통신위 설립은 제쳐놓고라도 당장 닥쳐온 지상파방송사 재허가추천 심사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희용 /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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