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뒷전·언론의 집단 관음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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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뒷전·언론의 집단 관음만 남아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7.09.18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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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학력…권력형 게이트…섹스 스캔들

태풍 ‘나리’가 한반도 남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그 사이 또 하나의 태풍이 남한 사회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란 이름의 폭풍이다.

신정아 씨 관련 의혹은 지난 7월 학력 위조 논란으로 시작해 8월 말부터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권력형 게이트라는 분석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밝혀졌고 인권 탄압까지 자행됐다. 언론 다수는 ‘황색 저널리즘’이란 오명을 얻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은 8월 16일~9월 14일 10개 종합일간지를 모니터한 결과, 신문들이 “신정아 씨 개인의 사생활을 쫓거나 ‘카더라’ 식의 정보를 남발했다”고 지적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변 전 실장과 신 씨가 100통의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이 검찰에 입수됐다” 등의 내용을 확인 없이 보도했다.

신 씨의 사생활도 무분별하게 파헤쳐졌다. 신 씨의 월급, 빚 내역 등이 자세한 수치까지 보도됐다. 11일엔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집이 가깝다는 소식까지 주요 뉴스로 타전됐다. 신 씨가 거주한 오피스텔과 변 전 실장이 투숙한 호텔의 이름과 자세한 위치도 공개됐다.

급기야 13일엔 문화일보가 신 씨의 누드사진을 공개했다. 문화일보는 문화계 인사로부터 입수했다며 모자이크 처리한 누드 사진을 게재하고 사진 속의 정황을 추측 보도했다. 보도 직후, 대부분의 일간지와 인터넷 신문들은 문화일보 지면을 캡처, 재가공해 보도했다. 이날 문화일보 홈페이지는 접속 폭주로 마비가 됐다.

언론·시민·여성·인권단체들의 비판은 거셌다. 11개 단체는 14일 문화일보 사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천박한 저질 상업주의”, “인권 탄압”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밝혀야할 부패 커넥션이 무엇인지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인권의 영역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문화일보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성토했다.

문화일보와 일부 언론들의 누드 사진 게재에 대해 여성계에선 “내 몸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스럽다”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여성주의저널 ‘일다’의 조이여울 편집장은 “공포스러웠다”며 “여성의 몸이 남성의 출세를 가로막는다고 보면서 한편으론 집단 관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 씨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가 인권 탄압인 동시에 젠더 차별이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신 씨 역시 중앙일보와의 통화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젊은 독신 여성이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문들은 〈“여자라서 출세하기 훨씬 쉽다”〉(중앙), 〈다채로운 남성편력…“잠 못 드는 유력 인사 많을 것”〉(경향), 〈‘몸로비’ 했다면 처벌할 수 있나〉(세계) 등 신 씨가 여성이란 점을 이용하거나 몸으로 로비했을 가능성을 부각시킨 내용들을 보도했다. 김언경 민언련 모니터부장은 신문들이 “사실 관계를 떠나 신 씨가 부정적으로 출세를 위해 몸을 함부로 했을 거라는 뉘앙스의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유선영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은 신 씨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허위 학력 프레임 △정치 스캔들 프레임 △섹스 스캔들 프레임 등 세 개의 프레임으로 설명했다. 유 위원은 “언론은 처음부터 섹스 스캔들 프레임에 맞춰 보도를 했다”며 일련의 보도는 섹스 스캔들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었다고 지적했다. 유 위원은 “학력 프레임, 정치 프레임에 맞췄다면 누드 사진까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흥밋거리는 될 수 있겠지만,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선 옳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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