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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를 하면 방송이 보인다

|contsmark0|“방송은 심의로 시작해서 심의로 끝난다?!”이 말은 마치 방송의 모든 것이 ‘심의’인 듯 보여지게 하지만 단지 농담만은 아니다. 늦은 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대다가 방송이 끝나고 애국가까지 다 듣고 나면 방송에서의 심의의 위치를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으리라. 그날 방송이 시작되는 ‘sign on’과 방송이 끝나는 ‘sign off’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본 방송은 방송위원회 심의규정을 준수합니다’라는 멘트 아니던가.일선 pd들에게 ‘심의’는 우선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힘들여 만든 작품에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달갑지는 않을 것. 그렇다면 제작하던 pd들이 심의부에 가서는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contsmark1|입사 10년 차인 ‘박심의’ pd는 심의부에서 근무한지 6개월쯤 됐다. 제작부서에 있는 동료 pd들은 그가 출퇴근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새벽 6시에 출근하거나 아니면 오후 4시쯤 출근해 밤을 꼬박 새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퇴근하기 때문이다. 방송 시작시간부터 끝날 때까지 프로그램을 모니터해야 하기 때문에 꼼짝없이 브라운관을 지켜보아야 한다. 자사 프로그램뿐 아니라 타사 방송까지 봐야 하는 그에겐 ‘하루 tv시청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정말 원없이 프로그램을 본다.모든 프로그램은 대본이나 큐시트 등으로 사전심의 한다. 대본에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을 요청하고 다시 확인하고 실제 방송에 반영이 되었는지도 확인한다. 보도프로그램이나 생방송은 사전심의가 어렵기 때문에 담당 cp에게 심의를 위임하지만 실제 방송되는 것은 직접 챙겨야 한다. 그래서 메인 뉴스는 다른 방송사까지 녹화해놓고 신경써야 한다. ‘박심의’ pd는 교양 pd 출신이지만 이제는 드라마는 물론 오락프로그램, 하다못해 신경도 안 쓰던 어린이 만화영화까지 모두 챙겨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목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제작에서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객관적인 시각도 갖게 되었다.“제작할 때는 프로그램에 매몰되어 있었지만 제작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다. 타사 프로까지 보게되어 스스로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kbs 민영목 차장)“현업 땐 도무지 볼 시간이 없다. 심의부에 와서 방송의 다양성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또 편성 전체가 눈에 들어와 방송 보는 눈이 달라졌다.”(kbs 김광필 차장)화장실 갈 시간만 빼고 계속 텔레비전 앞을 지키다보면 어느덧 새벽 1시. 그렇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침까지 바로 리포트를 써야 한다. 초반엔 텅빈 컴퓨터 화면을 뭘로 채워야 할지 자판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지적될 것, 칭찬할 것을 금방금방 구분해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새 프로그램 읽는 방법이 몸에 뱄다. 이렇게 작성한 리포트들은 위에 보고되고 보고된 것들은 추려져 사내 통신망에 바로바로 띄워진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취합해 리포트에 반영한다. 이 보고서들은 일선 제작진에게 전달돼 더 나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참고자료가 된다.“밖에서는 널널하다고 보지만 업무량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야근도 많고 그냥 보던 뉴스도 이제는 분석하고 비교해야 한다.”(mbc 조중현 차장)이렇게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직업병’이 도진다. 쉬려고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그냥 쉬면서 보지를 못한다. 어느새 ‘칼’을 들고 프로그램을 요리조리 뜯어내고 있는 그다. 덕분에 ‘온 가족의 심의요원화’ 되기도 한다.업무량이 많기는 하지만 제작할 때만큼 시간이나 결과에 쫓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박심의’ pd는 요즘 미뤄두었던 공부를 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이렇게 원없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지금의 업무가 자기가 하고싶던 공부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여기고 있다. 사실 pd에게 다른 사람의 프로그램만큼 좋은 교재가 어디 있겠는가. 잘된 것은 잘된 것대로, 잘못된 것은 또 그 나름대로의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10년쯤 프로그램에 시달리다보니 잠깐 충전할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해서 지원한 심의부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차분히 방송에 대한 자기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pd에 대한 재교육의 필요성은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정이다. 심의부의 경험은 전체적인 안목을 키우고 재교육의 기회, 자기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sbs 온형옥 pd)그러나 ‘심의부는 pd를 괴롭히는 부서’라는 선입견을 대할 때는 ‘박심의’ pd가 괴로워진다. 프로그램에 대해 지적도 물론 하지만 칭찬도 큰 비중이기 때문이다. pd들은 혼신을 다해 만든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나면 두 가지 궁금증을 갖는다. ‘얼마나 보았나’와 ‘어떻게 보았나’. ‘얼마나’는 시청률로 어느 만큼은 나타나지만 ‘어떻게’에 대한 궁금증 해결은 심의부가 도와준다. ‘박심의’ pd를 비롯한 심의부 pd들은 동료가 더욱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contsmark2|심의부에 있는 pd들은 “심의도 pd의 업무”라고 입을 모은다.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방송을 이해하려면 편성과 심의는 꼭 한번쯤은 거쳐가야 한다는 뜻. 그러나 프로그램으로 존재하는 pd들에겐 여전히 ‘한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순환근무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왜? 심의부를 거쳐보면 방송이 보이기 때문이다.“바람직한 방송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방송심의는 존재해야 한다. 방송심의는 인체에서와 마찬가지로 ‘걸러낼 것은 걸러내는’ 신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민영목 차장)<이대연>|contsma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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